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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Jun 05. 2023

이탈리아 문학의 성육신

신곡 I : 지옥편

대부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한 번 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버전이 굉장히 많고 이 중에서 로뎅이 직접 작업한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많은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모델이다. 바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신곡의 작가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이다.


 로뎅 박물관에 전시된 "지옥의 문"의 일부인 "생각하는 사람"(좌), 단테 알리기에리 초상화(우)(출처: 위키백과)

 

"지옥의 문"을 자세히 보면 심판받는 영혼을 고뇌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남자를 자세히 보면, 단테의 상징과도 같은 두건을 쓰고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됐을 때 이 인물의 이름은 "시인"("The Poet"/Le Poete)라고 불려졌다. 이것만 보더라도 단테의 작품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신곡(Divinia Commedia)은 이탈리아 문학의 출발점이자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문학과 언어뿐만 아니라 세계문학과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방대한 영향을 미친 이 작품을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 3부작으로 나눠서 소개할 예정이다.


인간 단테  

단테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민족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피렌체, 베로나, 로마, 베네치아 등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졌다. 이 도시들은 대부분 공화정이었고 외부의 침략도 많이 받으며 서로 전쟁을 자주 벌이키기도 했다.


아직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 중세 피렌체에는 아직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은 없었지만,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사실 피렌체뿐만 아니라 무역으로 부유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언제나 교황청, 그리고 유럽의 강국들에게는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이탈리아 국가들의 지배층들은 크게 두 파벌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바로 교황과 교황청과 가까운 겔프당(Guelfs)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당(Ghibellines)였다. 단테가 성인일 때 피렌체는 겔프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단테 자신도 정치에 뛰어들 때 겔프당 소속이었다.


기득권이었던 겔프당도 온건파(White Guelfs)와 강경파(Black Guelfs)로 나뉘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보니파시오 8세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피렌체로부터 군사를 요청했다. 보니파시오 8세(Boniface VIII)는 대가로 로마로 순례를 오는 시민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겔프 강경파는 당연히 교황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단테가 속한 온건파는 이를 거부했다. 최우선순위는 피렌체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교황의 요청이라도 피렌체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 대부분 온건파 겔프당원들은 피렌체로부터 추방을 당하였고, 거기엔 단테도 포함되었다.


지옥, 연옥, 천국, 그리고 피렌체 앞에 서있는 단테(출처: 위키백과)


사실, 각 파벌과 당이 누구를 지지하고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취하는 건 모두 명분에 불과했지, 피렌체의 정치는 당시 가장 부유한 소수 가문들 간의 파벌싸움이었고, 단테 자신을 비롯해 정말로 피렌체를 위해 헌신하는 지성인들은 이의 희생양이었다. 실제로 '신곡:지옥편'에서 피렌체 시민들이 많이 등장한다.

피렌체여, 이만한 명성을 지니고 온 땅, 바다 위로 날개를 펼쳐 기뻐하라! 그대(피렌체) 이름이 온 지옥 가운데 울려 퍼지는구나
(Inf. XXVI 1~3)


이는 실제로 당시 피렌체의 모토를 패러디한 문구이다.


중세 기독교 알레고리

우선 이 작품의 장르를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세 시대 문학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발로 알레고리(Medieval Allegory)이다. 알레고리란 표면에 드러나는 플롯과 인물 밑에 상징적인, 윤리적 의미를 암시하여 독자에게 교훈을 전하는 문학의 장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알리고리 중 하나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이다.


단테의 여정은 어쩌면 신을 알아가고자 하는 한 기독교인 영혼의 알레고리이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세 명의 길잡이는 각 영혼이 걸쳐야 할 성장의 단계를 상징한다. 지옥에서 연옥까지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는 로마의 황금기 때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를 쓴 시인으로, '이성'을 상징한다. 지옥, 그리고 '연옥편'은 영혼은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철학적으로 고찰한다면 신의 뜻에 우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영혼을 인도하는 길잡이로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시인 베르길리우스 자신이기도 하다. '지옥편'(아틸라이아로 Inferno는 라틴어 infra, "아래"의 비교급 'inferior'으로 말 그대로 아래 세상을 의미; 현재 영어에서 'inferno'는 '지옥불' 또는 '화로' 등의 의미로 사용)에 묘사되는 지옥은 성서와는 무관하다(우리가 떠오르는 불타는 지옥의 모습은 신곡,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보스 같은 화가들의 그림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지은 죄에 따른 공간의 분류는 철학자 키케로,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묘사된 사후세계에 기반하고 있다; 카론(Charon)이 나룻배에 영혼들을 실어 스틱스 강(Styx)을 건너서 도착한 지옥, 그리고 망자의 도시인 디스(Dis)는 물론, 사후세계를 심판받는 자와 복 받는 자에 따라 구역을 나눠서 최초로 묘사한 문인이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첫 길잡이에 걸맞은 비하인드 스토리의 소유자다.


산드라 보티첼리가 남긴 신곡 삽화, 단테를 '배신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이 보인다(출처: 위키백과)


예언자적 페르소나

흥미로운 점은 신곡은 알레고리임에도 불구하고 단테와 동시대, 실존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옥 8층은 '사기지옥'이라는 곳이다. '사기지옥'은 다시 10개의 원으로 나뉘는데 그중 제3원은 성직 매매자들의 지옥이다. 이곳의 영혼들은 바닥에 뚫린 구멍에 거꾸로 처박혀 있고 발만 밖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이들의 발에 불로 태우는 형벌이 내려졌다. 그러나 유독 불이 붉게 타오르는 발이 보여 단테는 그에게 정체를 묻는다.


벌써 여기까지 왔나, 보나파시오?... 그녀를 속여 음행 해서 제물을 충분히 축적했나 보지?(Inf. XIX. 52-57)


죄인은 단테가 보이지 않고 그를 교황 보나파시오 8세로 착각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그녀는 바로 가톨릭 교회를 상징하는데, 말 그대로 자격 없는 교황이 성직자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가 당연히 지옥에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억해야 할 건 단테가 이 글을 쓸 때 보나파시오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는 피렌체의 겔프 당이 분열된 원인을 제공한 자이기도 하다.  


'배신자지옥' 중 성직매매자들을 발견한 단테(우)와 베르길리우스(좌)


신곡의 극 중 시대적 배경이 플롯과 인물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옥편 제1곡 도입부를 보면 "삶이라는 여정의 종결까지 반환점을 통과하고 있을 때"로 시를 시작한다. 당시엔 사람이 대략 70세까지 살 수 있었기에 극 중 단테는 35세 때 사후세계로 여정을 떠난다. 실제 단테는 1300년에 35살을 맞이했다(1308년부터 신곡 집필 시작). 1302년에 그는 교황청에 파견 가, 보나파시오와 만나는 동안 일부 강경파 겔프 당원들에 의해 추방 선고를 받는다. 그들은 억울하게 재정 횡령, 그리고 부정부패 혐의를 씌운다. 단테는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보나파시오 교황의 지옥행을 "예언"하고 있는 셈이다. 고대의 호메로스부터 구약성서의 선지자들까지 시인들은 초자연적인 세상, 신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여 그들을 계몽시킬 의무가 있다고 믿었었고, 단테는 그 전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올림포스 신들의 친밀한 대화와 계략을 시를 통해 전한 거처럼, 단테는 사후세계에서 자기 자신, 그리고 피렌체의 운명과 궁극적으로 신의 뜻에 대한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주제는 '연옥편'으로 넘어가면 더 심층적으로 다뤄진다.


지옥의 바닥, 상승의 시작

지옥의 여정은 지옥의 최하단에서 끝난다. '배신지옥'의 최하단인 이곳에는 과거, 현재의 인류의 모든 악과 고통의 시발점인 루시퍼(사탄)가 갇혀있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옥의 이미지가 아니라 루시퍼의 몸은 얼어있는 호수에 갇혀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얼어붙은 호수가 절망의 분수(영어 "the fount of misery")라고 불린다. 중세 미술과 문학에서 생명의 상징인 분수가 지옥에서는 악의 근원지를 담아두고 있는 셈이다.


한 때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던 루시퍼는 머리가 세 개가 있는 괴물이 되어 있다. 세 머리가 마치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패러디처럼 느껴지는데, 세 머리에 있는 여섯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세 명의 배신자를 씹어먹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Judas Iscariot), 그리고 카이사르 암살에 동참한 브루투스(Marcus Junisius Brutus) 그리고 카시우스(Gaius Cassius Longinus). 


지옥의 최하단에 갇혀있는 루시퍼(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거꾸로 뒤집어지는 데, 그 순간, 지구의 중심 핵을 통과한 것이다. 그렇게, 단테는 그의 길잡이를 따로 그들이 처음, 지옥으로 들어올 때와 반대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영혼은 이성을 따라 신과 가까워지려는 여정 중, 천당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우선 내려와, 사탄이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단테는 지상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면서 '지옥편'은 막을 내린다.


이탈리아인의 시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에게 유일한 위로는 시였다. 신곡을 쓰기 전에도 이미 시인으로서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지만, 신곡 이후에 단테는 이탈리아 문학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신곡의 본래 제목은 "희곡"을 의미하는 La Commedia이다. 필자도 이 작품을 영어로 처음 접했는데 제목을 보고 적잖은 혼란을 경험했다("comedy"의 어원). 아무리 생각해도 코믹한 내용을 다루는 글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commedia는 익살스럽거나 웃긴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니라 흔히 비극(Tragodia)의 소재가 되는 고귀한 소재(역사, 철학, 신학 등)보다는 가벼운, 수준이 낮은 주제를 다루는 문학을 희곡으로 분류했다. 극 중 베르길리우스가 사실 전형적인 비극적 문인이다.


그러나, 신곡의 소재와 플롯은 모두 희극보다는 비극에 걸맞은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Commedia로 불리는 것일까? 바로 언어 때문이다. 모든 문학은 본래 라틴어로 집필되었다. 심지어 성서도 라틴어 번역본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지옥편 제31곡을 보면 단테가 '배신 지옥'에 처음 도착한다. '배신 지옥'은 다시 5개의 구역으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구역에는 '기간테스'(γιγαντες, "거인")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네빌림(נְפִלִים / 인간과 타락한 천사 사이에 나은 거인, 큰 사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 족과 같은 신에게 반역한 존재들이 심판을 받는 곳이다. 그중에서 단테는 바벨탑을 건축한 니므롯을 발견한다.


신곡 삽화가로도 유명한 Gustave Dore 작품으로 바벨탑을 소재로 한 "The Confusion of Tongues" (출처: 위키백과)


중세시대 때 학문, 교육, 종교, 그리고 외교, 모든 분야에서 라틴어를 고집한 이유 중 하나가 이탈리어, 불어, 독어 등 다른 일반 언어(vernacular)는 죄의 산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언어만 쓰던 인류가 하늘과 닿는 탑을 쌓으려는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신은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창 11). 그래서 교회는 라틴어라는 하나의 언어로 유럽의 죄성을 치유하려는 것이다. 바벨탑의 증상을 없애겠다는 의지였다. 실제로 당시에 표준화된 문법 체계를 가진 언어가 라틴어 밖에 없었다.


이는 니므롯, 그의 악의로 인해 더 이상 세상은 하나의 언어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노라(Inf. XXXI. 80)


그렇다면 단테는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쓴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도 비록 라틴어로 읽히고 있었지만, 고대 로마의 대문호의 스타일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인 라틴어였다(sermonis humilis - "겸손한 언어"). 단테는 이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라틴어를 몰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신곡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그가 구사했던 토스카나(Tuscan) 방언이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단테가 신곡을 출판함으로써 그가 현대 이탈리아어를 완성시킨 것이다. 마치 셰익스피어가 현대 영어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To Be Continued

신곡을 하나의 게시글로 소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향후 '연옥' 그리고 '천국'을 통해 단테의 놀라운 세계와 그 영향력을 소개하며, 단테는 왜 아직도 우리가 꼭 읽고 공부해야 할 가치가 있는 대문호인지 함께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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