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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Jun 19. 2023

시작이라는 끝

신곡 III : 천국편 

1968년 크리스마스이브, 우주비행사 윌리엄 엔더스, 제임스 러블, 그리고 프랭크 보먼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은 달의 궤도에 진입한 최초의 인간이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엔더스는 250mm 카메라로 월면을 촬영하는 도중, 달의 지평선 너머 지구가 떠오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보먼에게 다급하게 컬러 카메라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하고 일명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엄청난 사진을 남겼다.  


"지구돋이"는 한 장의 사진 이상이었다. 이 사진 한 장이 인류 전체를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작은, 하나의 물체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거보다 너무나 어둡고 넓은 반면, 지구는 너무도 작아 보였는데, 이때 대지예술(Land Art)처럼 완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꿔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창구도 찾기 시작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로부터 22년 뒤, 보이저 1호 탐사선은 지구로부터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었다. 일명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리는 이 사진에서 지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토시 하나처럼 나온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출처: 위키백과)


저기(지구)에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이름만 아는 사람, 역사상 모든 인간이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수 천 개의 신앙, 이념, 경제체제... 인류 역사상 모든 이념의 전도사, 모든 부패한 정치인, 모든 슈퍼스타와 위대한 지도자, 모든 성자와 죄인이 햇빛에 떠있는 작은 먼지 조각에 살았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동일한 제목의 책에서 이 사진에 대해 한 마디 남겼다. 그런데 아폴로 8호가 달에 접근하기 647년 전, 보이저가 태양계를 벗어나기도 669년 전에 이탈리아인 시인 한 명이 자신이 신이 창조한 세계를 벗어나 천국으로 승천하는 도중, 잠깐 뒤돌아보았다. 


아래 7개의 항체와 우리의 지구가 보였는데, 그 애처로운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지구를 가장 하찮게 생각하는 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Par. XXII 134-137).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성자들과 함께 서있는 단테(중앙)와 베아트리체(중앙 오른쪽) (Philop Veit 프레스코화)


단테는 신에 의해 창조된 세상을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한 하느님의 영역인 최고천(Empyrean)에 진입하기 직전 지금까지 그가 온 여정을 되돌아보는 순간이다. 


신곡의 마지막 편인 천국편을 보면서 인류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철학, 새로운 사명과 목적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선생님 책상에 올라선 교실의 모습을 보라고 한 거부터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단테는 천국으로 오르면서 점점 변화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신곡'의 세 편 중에서 어쩌면 가장 덜 읽히는 천국편, 단테의 여정이 이제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만, 천국은 영혼에게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사실은 아예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테의 천국 

천국을 이해하려면 중세시대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가 사실상 끝이 없고, 있더라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단테와 동시대 사람들의 우주는 이보다 훨씬 작았다. 우주 전체에 별이 7개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그리고 토성이었다. 여기선 "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중세학자들은 이를 행성을 뜻하는 "planet"이라고 표현한다. 지구를 중심으로 나머지 6개의 항성이 공전하고 있고 토성을 지나면 항성천(Cielo delle stelle fise)라고 말 그대로 밤하늘에 보이는 별과 별자리들이 돌고 있고 그 너머에는 원동천(Cielo cristallino o primo mobile)라고 말 그대로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다. 


천동설(Bartolomeu Velho 작품,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이 세계관은 이집트의 프톨로메우스가 채택한 천동설에 기반하고 있다. 당시에는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한 행성과 별자리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세계관이었다. 중세 우주론을 소개하는 책 "The Discarded Image"에서 C.S. 루이스는 이미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으로 우주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진 지금, 중세시대의 우주를 소개하는 이유에 있어서, 그 역시 중세 우주론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 세계관의 모든 요소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다고 전한다.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밤하늘과 우주를 볼 때마다 언제나 이를 창조한 장인인 신의 손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관찰과 이론으로 우주는 영혼이 없고 비어 있는 거처럼 느껴지는 데에 비해, 중세시대 우주는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단테가 묘사한 천국도 마찬가지다. 사실 천동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헬레니즘 시대부터 행성들이 로마의 신들과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천국편을 보면 천국의 각 영역을 보면 이 사고방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금성천(사랑의 신 비너스)에는 사랑에 불탄 영혼들, 태양천(태양, 음악, 이성의 신 아폴론)은 지혜로운 자들, 목성천(제우스, 그리고 기독교 하느님과 동일시) 정의로운 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지옥과 연옥과 마찬가지로 천국마저도 이교도 문화가 정말 많이 들어와 있는 듯,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단테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천국편 4곡에서 베아트리체는 그런 단테의 혼란을 느끼고 그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eus)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본래 탄생한 별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천동설의 가장 직접적 영향 중 하나가 사실 점성술('astrology'), 즉 천문학적 현상을 바탕으로 미래, 혹은 태어날 당시의 별자리 등을 기반으로 사람의 성향과 운세를 예측하는 점술이다. 중세시대에는 이것이 최첨단 과학으로 받아들여졌다. 


베아트리체는 인간이 수 천년 동안 플라톤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하늘에 있는 항체와 천문학적 현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설명한다. 비록 천문학적 현상들이 인간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이들은 신이 아니라 덕목을 상징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로마의 신들조차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신의 뜻

지옥편과 연옥 편에 비해 천국편에는 유독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스토리를 언급하거나 성서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테의 가이드가 베아트리체로 바뀌면서부터 신곡의 언어, 그리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전까지 단테는 '이성'과 인간적 지혜의 상징인 베르길리우스  하지만, 그들이 더 높이 승천하면 할수록, 단테는 신의 섭리, 그리고 그의 목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시작한다. 천국편의 플롯은 계속해서 단테의 이 관점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필자는 천국을 처음 읽을 때, 천국도 지옥과 연옥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영역이 나뉘어 있고, 각 영역에 위계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단테 역시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천국의 제1영역인 월성천(Cielo della Luna)에서 만난 영혼들에게 더 높은 영역에 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피카르다 도나티(Piccarda Donati)는 이들이 신의 은총(영어 버전에는 "charity"라고 번역) 덕분에 천국에 있는 것이기에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의 이 은총은 천국의 모든 영역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피카르다는 은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은총은)(신의) 신성한 섭리 안에 사는 삶이니, 
우리들의 각기 다른 뜻들이 하나가 되는도다(Par III 80, 81).


이들이 만약 월성천을 벗어나 다른 영역을 원한다면 이는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마음으로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제는 신의 섭리 하에 있어 월성천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피카르다와 만나는 단테와 베아트리체(Gustav Dore 삽화)


신의 뜻 안에서 우린 마침내 평화를 찾았네:
섭리는 신이 창조한, 그리고 자연이 더하는
피조물이 흘러드는 바다랍니다(Par III. 96-97).

연옥에 16곡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피카르다의 신의 은총과 섭리에 대한 설명과 논리적으로 모순 관계에 있는 거처럼 보인다. 어떻게 신의 섭리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일치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모순이 바로 천국의 본질이다. 




단테의 궁금증은 개인 구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성천(Cielo di Mercurio)에 도달했을 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천국편 6곡)를 만난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해 비잔틴 제국의 황금기를 이루어낸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성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는 등 독실한 기독교 황제이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단테에게 로마제국의 역사를 개관해 준다. 루크레티아의 능역과 공화정의 설립, 한니발 장군과 포에니 전쟁 그리고 카이사르까지 이어진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아스(Aenead)의 내용을 알고 있다면, 아이아스 제6권에서 안키세스가 사후세계에서 로마의 건국자에게 로마의 미래를 설명해 주는 장면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신곡의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의 역사 전체가 신의 섭리에 의해 움직여졌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온 세상을 로마와 같이 평화롭게 하기로 결단하여
카이사르는 로마의 뜻에 따라 세상의 주인이 되었노라(Par. VI 55~58)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기독교 하느님이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가 탄생하고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기 가장 좋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류의 역사마저도 신의 섭리라는 새로운 렌즈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신곡이 탄생한 이유

하지만, (극 중) 단테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이것이다: 단테가 이 순례를 오게 된 근본적이 이유는 무엇일까? 


천국편 25곡에서 단테는 독자에게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에서 본 것으로 집필한 시로 위대한 시인으로서 월계수 관을 쓰고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한다(Par XXV. 8-9). 이 위상으로 고국으로 귀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 희망에 의해서 신곡이 탄생한 게 아닐까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시적인 재능 때문에 피렌체 복귀를 확신하는 건 아니다. 

극 중 단테는 연옥에서 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단테가 추방당한 이후에 신곡을 쓰게 되지만 극 중 단테는 추방 전이기 때문에 그는 시인임과 동시에 선지자가 된 셈이다. 올림포스 신들의 사생활을 생생하게 전한 호메로스, 서사시로 로마 제국을 완성한 베르길리우스,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인들의 귀환을 아름다운 시문으로 예언한 구약성서 선지자들처럼 시인은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와 동일시되는 문화가 인류의 역사 동안 계속 지속되어 왔고, 단테 역시 그 자신이 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단테가 신곡을 작성하고 있을 시점에 독일의 하인리히 7세가 로마인의 왕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최초의 황제인 샤를르 대제(Carolus Magnus / Charlemagne)의 칭호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하인리히는 곧이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 사신을 보내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의 왕, 그리고 로마에서 황제로 대관식을 갖기 위해 이탈리아에 군대를 이끌고 입성할 것을 통보한 상태다. 이 중에서 새로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영접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지 않은 국가가 딱 하나였는데, 바로 피렌체였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반도에 진출하는 앙리 7세의 군대

새로운 황제에 대한 반감이 퍼지기 전에 그 원흉인 피렌체를 침공하기로 결정되었다. 추방된 단테로서는 이보다 기쁜 소식이 있을 수 없었다. 비록 단테는 본래 교황을 지지하던 겔프당 소속이었지만, 이제는 교황청에 의해 자신의 고국의 자치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피렌체를 구원할 수 있는 자는 하인리히 황제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단테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312년 5월, 하인리히는 바티칸을 점령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대관식을 라테라노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9월에는 피렌체를 공격했고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주 후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황제는 결국 1313년 8월, 나이 40세에 말라리아에 걸려 허무하게 사망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가 사후세계에서 목격하는 일들, 들은 일들을 통해, 신곡은 이제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넘어서서 보다 보편적인 메시지를 가지게 되었다. 


만물의 원동력, 사랑

지옥, 연옥, 심지어 천국 모두를 묘사하는 공통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불이다. 지옥은 죄인들을 심판하는 불, 연옥은 죄를 정화하여 승천을 준비시키는 불, 천국에서는 천지창조부터 인간이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인 사랑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이제 단테는 창조된 세상을 넘어서 진짜 신의 영역에 진입한다. 바로 천국의 제8영역 항성천(Cielo delle stelle fise)이다. 여기서 성 요한, 성 야고보, 그리고 성 베드로를 만난다(천국편 26곡).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고 공교롭게도 성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이었다. 이때, 단테는 성 요한으로부터 오는 빛이 너무 밝아 시력을 잃고 만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를 보고 눈이 멀었을 때와 동일한 구조다. 


요한, 야고보, 베드로와 만난 단테(Gustave Dore 작품)


요한은 단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너의 영혼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냐?" 단테는 사랑, 모든 사랑의 기준이 되어야 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알고 싶다고 답한다. 요한이 처음 단테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이성, 철학, 그리고 성서의 권위(Par. XXVI 25, 26)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요한은 이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반론한다. 그러나 연옥 17곡에서 베르길리우스에게 잘못된 사랑의 종류와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랑은 그대 안에 있는 모든 선한 덕목과
심판받아 마땅한 모든 행위의 씨앗이란다(Pur. XVII 114, 115).


그래서 단테는 각종 성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미 천국의 도착한 영혼들의 소망, 그리고 신의 은총 덕분에.. 


그릇된 사랑의 바다로부터 이끌려
의로움이라는 해안가에 내려놓으셨사오니(Par. XXVI 62-63). 


이 말을 한 이후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눈을 뜨게 해 준다. 


이로써 베아트리체는 눈에서 나는 광채로 
나의 눈에 있는 비늘을 제거해 주었다(Par XXVI. 76-77).


이 구절의 언어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하느님의 명을 받고 찾아온 유대인 아나니아를 만나고 시력을 회복했을 때의 어휘를 그대로 차용해 온 것이다. 

부활의 계절, 봄 

이 시험을 통과한 후 베드로는 그에게 접근한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맡겼다고 가르친다. 또한 가톨릭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의 첫 주교이자 1대 교황이기 때문에 모든 교황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나 다름없다. 그는 단테에게 접근해서 현재 유럽에서 교황청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지상에서의 나의 직분을 차지한 자는,
지상에서 나의 자리, 나의 자리는
하느님의 눈에 보시기에 공석이구나. 
나의 묘지를 시궁창으로 만들어놓았구려!(Par XXVII 22-25)


현재 교황청이 세워진 자리가 베드로가 순교 후 묻힌 장소이기도 하다. 성 베드로는 단테와 작별하기 전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남긴다. 


... 내 아들아, 너는 결국 그 육신을 안고
지상으로 다시 내려가야 할 텐데, 그곳에서 입을 열고
내가 그대로부터 감추지 않은 것을 감추지 마오(Par. 64-66).


한 마디로, 지금까지 1대 교황인 베드로 본인에게 들은 14세 게 교황청의 실태뿐만 아니라, 어쩌면 지옥, 연옥, 지금까지 단테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시로 남기라는 명령이다. 




이 쯤에서 신곡이 1300년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몇 월에 진행되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에 도착했을 때 부활주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난 날 단테라는 영혼이 연옥을 오르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시작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성 베드로가 그에게 말한 거처럼, 단테가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도 사후세계에서 돌아온 것이기에 일종의 부활이다. 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단테가 신학적으로 가장 살아있는 상태인데 더 큰 목적을 위해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나야, 성서의 말을 빌리자면 거듭나야 하는 상황이다. 


단테는 이제 신의 임재하심 그 자체인, 천국의 마지막 영역인 최고천(Empireo)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그는 성모에게 기도를 올리는 데 그 내용에 한 번 주목했으면 한다. 


천국의 여왕이시여, 기도하나이다,
그대가 뜻하는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이 같은 환상을 본 후에 저의 눈 그리고 의지를 지켜주소서(Par XXXIII 35-36).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서사시인들이 뮤즈에게 시를 집필하기 전 기도를 올리는 거 같다. 단테는 이제 지상으로 돌아가 사후세계에서 보고 느낀 점을 모두 시로 남길 준비를 하고 있다. 단테는 선지자적 부르심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이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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