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빚이 시작된 이야기

바닥에서 시작된 싸움

by 유정

28살, 빚 4천만 원.
통장엔 10만 원도 없었다.

신호등 앞에서 카드 연체 문자가 왔을 때,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도망으로 시작된 삶


초등학교 2학년.
우리 가족은 포항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다.


아버지란 사람은 도박으로 빚만 남기고,

엄마와 우리 남매를 빚쟁이들 손에 떠밀었다.
엄마는 밤마다 설거지 일을 하고 낮에는 잠드셨고,

아버지는 감방을 갔다 오더니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전학만 열두 번.

사업한다고 매년 빚쟁이에게 쫓겨 도망 다니며 살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알바를 했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




돈 없는 학생에게는 기회조차 없었다


고등학교를 실업계 디자인과로 갔다.
운 좋게 중학교 때 선생님들을 잘 만나 모두 나의 재능을 찾아주시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었다.


1학년에서는 그림 실력으로는 늘 상위권이었지만,

3학년이 되자 입시반 학원 다니는 친구들에게 다 밀렸다. 학원비를 낼 수 없는 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시급

2,250원을 받고 하루 종일 일하며 시간이 흘렀다.


또 운 좋게 전문대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때문에 늘 마이너스.
과제하려면 재료비가, 실습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모아둔 500만 원은 반년 만에 다 사라졌다.


교수들도 똑같았다.
디자인 성적은 내가 압도적이었는데, 돈 많은 집 자식들 이름만 기억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지만…


방학 때는 싱가포르 연수를 간다며 교수는 말했다.
“300만 원 구해와라. 노트북도 사 와야 한다.”

그 말이 내게는 선고처럼 들렸다.
“넌 돈이 없으니 낄 자리가 없다.”


나는 그날 이후 학교에 남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결국 중퇴를 선택했다.


왜 휴학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대답할 수도 없이.




착취와 쥐꼬리 월급


다행히 디자인 쪽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월급은 80만 원.
토요일까지 나가고,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일을 못하면 욕설을 들었다.

그래도 버텼다. 디자인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6개월 만에 우울증이 와서 퇴사했다.


그 뒤도 비슷했다. 야근, 철야, 쥐꼬리 월급.
서울패션위크 같은 큰 행사도 맡았지만 대행사 구조 속에서 내 몫은 100만 원 남짓.


몇 천만 원짜리 예산을 다 굴려놓고도,
나는 갑을병정 중 ‘무(無)’였다.




연체 문자


3개월 넘게 매일 철야 아니면 야근을 했다.
자정 넘어 퇴근했고, 장염·방광염이 번갈아 터졌다.
엄마는 식당에서 직원으로 일했고, 둘째 동생은 군인.

막내 동생은 중학생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그러다 카드 연체 문자가 왔다.
학자금 포함 빚은 이미 4천만 원.
그 순간, 신호등 앞에서 나는 절망을 삼켰다.




바닥에서 시작된 싸움


그때가 내 인생의 바닥이었다.
처절했고, 하찮았고, 존재감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끝에서 나는 결심했다.
빚을 0으로 만드는 싸움을 시작하자고.

그 시간을 벗어났기에,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한 때 저는 벗어나기 쉽지 않은 굴레 속에 있었습니다.

암담했던 현실에서 나오는 건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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