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과 육식주의자 사이

‘유연함’이라는 다리

by 유연


우리는 종종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눕니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비건’과 고기 없는 식탁은 상상할 수 없는 ‘육식주의자’. 이 두 세계는 마치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둔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팽팽한 대립 속에서 제가 발견한 가장 희망적인 자리는 바로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유연한 채식’의 자리였습니다.


비건의 준엄함과 육식의 견고함 사이에서


비건의 삶은 숭고합니다. 생명 착취를 최소화하겠다는 그들의 단단한 결심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높여주는 북극성 같습니다. 반면, 육식은 우리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온 식습관이자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문화이고 즐거움입니다.


문제는 이 두 세계가 만날 때 발생합니다. 한쪽은 ‘육식의 폭력성’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다른 한쪽은 ‘유난스럽다’며 상대를 조롱할 때 식탁은 금세 전쟁터가 됩니다.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꼭 ‘전부’가 아니면 ‘무(無)’여야만 할까요?


유연함: 완벽주의라는 덫을 치우는 일


‘유연한 채식’은 비건의 방향성을 지향하되, 육식주의자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점심에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나의 채식 노력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죠.


완벽한 비건 한 명이 늘어나는 것보다,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안 먹는 육식주의자 열 명이 생기는 것이 지구에는 더 이로울 수 있습니다. 유연함은 채식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을 이 초록색 흐름 안으로 초대합니다. 비건에게는 ‘지치지 않을 여유’를 주고, 육식주의자에게는 ‘시작해볼 용기’를 주는 것이죠.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결국 비건이든 유연한 채식인이든, 심지어 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든 우리 모두의 목적지는 같습니다.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오래 이 푸른 지구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채식은 누군가를 겨누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서로의 식탁을 존중하면서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건네는 ‘다정한 손길’이어야 합니다.


다리 위에서 만나요


오늘 제 접시 위에 놓인 채소 요리는 비건의 이상에 닿으려는 노력이자, 육식의 습관을 조금씩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저는 비건과 육식주의자 사이, 그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놓인 이 ‘유연한 다리’ 위에서 더 많은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다정하게 메뉴를 골랐다면, 우리는 이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지니까요.



#유연한채식 #비건 #육식주의자 #다정한공존 #플렉시테리언 #식탁의철학 #완벽보다지속가능성 #라이프스타일 #브런치에세이 #나를돌보는식단




작가의 이전글유연한 채식주의와 다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