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험
엄마는 나를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나래 피아노 학원이었다. 나는 일곱 살이었고, 양팔이 건반 끝에 닿지 않고 발끝이 페달에 닿지 않았다. 투박한 피아노 위에서 '도, 레, 도, 레' 손가락을 까닥인 것이 첫 시작이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오면 학원에서 배운 것을 딱 다섯 번씩 더 치게 했다. 특별한 교육법이랄 것은 없었다. 하기 싫은 나는 마지못해 손가락을 움직였고, 곧 먼저 배우던 동네 애들을 앞서게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보다 잘 치게 되었다.
조금 더 자란 나는 피아노로 대학을 가고 싶었다. 당장 그러지 않으면 피아노와 영영 멀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걸 반대한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꽤 오랫동안 원망했다. 나는 음대생이 되는 대신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예술가를 꿈꾸고 있다. ‘연습하면 된다'는 진리를 경험으로 깨달은 아이는 뛰어나진 않아도 끈질긴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선물한 간단한 성취의 경험이 나를 결국 ‘객석’으로 데려왔다. 소리 나는 기계를 누르듯 서툴게 피아노를 치던 아이는 공연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행복한 관객으로 성장했다. 무대에 서지 않아도 예술가로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꽤 자주, 어쩌면 늘, 내가 혼자 성장했다고 믿었다. 예술가의 삶을 좇는 고상한 운명 따위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깨닫는 것은 내가 이루거나 포기한 크고 작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피아노는 내게 열정과 열등감, 미감(美感)과 미련을 동시에 가르쳐주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칭찬을 받던 아이는, 부모를 원망하던 청소년기를 지나, 예술을 동경하는 청년이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 전,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피아노 앞에 앉혀놓고 다섯 번을 반복하게 한 엄마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엄마의 응원과 함께 작은 손가락을 움직여 배운 것들이 여전히 나를 움직이고 있다.
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