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권위는 낮추고 역량은 높여라
주일 예배가 끝나고 반별 모임 시간, 교사 A는 성경 교재를 손에 쥐고 깊은 막막함에 빠집니다. 목사님이 공들여 준비해 주신 교재가 있지만, 아이들의 고개는 들릴 줄 모릅니다.
"지윤아, 일주일 동안 잘 지냈니?" "네." "서연이는? 어떻게 지냈어?" "그냥 잘요." "오늘 설교는 어땠어?" "좋았어요."
조금 더 깊은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몰라요." 아이들은 차마 휴대폰을 꺼내지는 못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보고 있거나 손가락만 만지작거립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 사이의 거리입니다. 지윤이와 하은이는 벌써 3년째 같은 반이지만, 반별 모임 시간에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눈을 맞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섬에 갇힌 듯한 이 무거운 정적 속에 30분이라는 시간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A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모두가 기피한다는 청소년부 교사를 자원했습니다. "내가 저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섬겨보리라"는 뜨거운 사명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사랑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사역은 갈수록 어렵고 막막합니다. 목사님은 "기도가 부족해서다, 기도로 아이들이 변화된다"고 강조하시며 '기도하는 한 교사'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매일 눈물로 기도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차가운 침묵 앞에 A는 자꾸만 작아집니다.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애들이 나를 거북해하나? 젊은 선생님이었으면 애들이 좀 더 웃어줬을까? 내 열정이 부족한 걸까?' 기도하는 마음 한편엔 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라는 갈급함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학생들 위해 모인 교사 회의, 하지만 그곳은 '아이디어의 전시장'이 아니라 '불가능의 확인장'입니다. 변화를 갈망하며 내놓는 제안들은 경험과 관리라는 견고한 벽 앞에 번번이 무너집니다.
젊은 청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손을 듭니다. "찬양팀 음향이 너무 찢어지고 마이크도 자꾸 끊겨요. 아이들이 가사를 보려면 뒤에서도 잘 보이는 모니터 TV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과거의 잣대입니다. "우리 어릴 땐 기타 한 대만 있어도, 아니 무반주로도 뜨겁게 찬양 잘했다. 요즘 애들은 환경 탓이 너무 심해. 이 정도면 충분해." 부장 집사님은 당회에 올려보겠다고 서류를 챙기지만, 모두가 압니다. '검토해보겠다'는 말은 사실상 '안 된다'는 말의 정중한 표현이며, 실제로 예산이 배정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라면이나 간식을 상시 구비해놓으면 어떨까요? 예배 끝나고 애들이 간식 먹으러라도 교회에 계속 남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요." 이 간절한 제안에는 '관리의 논리'가 즉각 방어막을 칩니다. "라면 국물은 누가 치우나? 애들은 절대 안 치운다. 지저분해지면 결국 누가 책임지나? 그냥 교회 식당 가서 다 같이 밥 먹으면 되지." 아이들이 '밥, 국, 나물' 위주의 교회 식단을 기피하며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린다는 사실은 '청결'과 '행정 편의'라는 명분 뒤로 힘없이 밀려납니다.
관계 회복을 위해 '1박 2일 반별 밤샘 모임'을 제안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부모들이 얼마나 예민한데. 애들이 밤에 안 자고 밖으로 도망이라도 가면 어떡하나?"
시험 기간 학교 앞 응원 방문 제안에는 "애들이 요즘은 부끄러워한다. 그 시간에 차라리 기도를 한 시간 더 해라"는 핀잔이 돌아옵니다. 누군가 덧붙입니다. "정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개별적으로 아이들 만나서 선물 주면 되잖아요." 그 말에 교사 A는 입술을 깨뭅니다. '저도 혼자서 아이들 찾아가서 만나기는 힘들단 말이에요. 같이 힘을 모아서 가면 용기가 나지만, 혼자서는 문자 한 통 보내는 것도 망설여지는데...'
수련회 장소를 논의할 때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설교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요?"라는 요청에 "우리 때는 다 딱딱한 맨바닥에서 무릎 꿇고 은혜받았다"는 고집이 길을 막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설교 시간마다 아이들은 허리가 아파 몸을 베베 꼬고, 정작 복음의 메시지는 공중으로 흩어집니다. 오후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해도 "누가 담당하나? 잠깐 하고 그만둘 거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장기 계획의 함정에 빠집니다.
걱정과 염려, 권위와 체계, 전통과 관리. 다 맞는 말이고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맞는 말들' 때문에 결론은 항상 똑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사역자와 교사들은 그렇게 불가능의 목록만 가득 채운 채 회의실 문을 나섭니다.
① Capacity: 기도를 넘어 '공감의 언어'를 공부하십시오
● The Vibe
기도는 사역의 엔진이지만, 공감은 그 동력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변속기입니다. "나이가 많아서"라는 자책 뒤로 숨지 마십시오. 공부하는 교사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습니다.
▶How to Set: '라떼(Latte)'를 버리고 '지금(Now)'을 읽으십시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계는 대화의 문을 닫는 자물쇠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정답이라 믿고 강요하기보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유튜브나 릴스 문화를 공부하며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번역하십시오.
→공감과 경청의 구체적인 기술들: 사랑에도 실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닫힌 입을 여는 네 가지 대화 도구를 익히십시오.
→미러링(Mirroring): 감정의 거울 되어주기 아이들의 "몰라요"는 거절이 아니라 감정 표현의 서툼입니다. 이때 "왜 몰라?"라고 다그치는 대신, 아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춰주세요.
예: "지윤이가 지금은 대답하기가 조금 쑥스럽구나",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마음이 조금 무거운 상태인가 보네.“
→I-Message(나-전달법): 비난 대신 내 마음 전하기 아이의 행동을 지적(You-Message)하면 아이는 공격받는다고 느껴 방어벽을 세웁니다. 대신 선생님의 감정을 주어로 말하세요.
예: "네가 대답을 안 하니 선생님 마음이 조금 걱정되네", "선생님은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서 고민이야.“
→폐쇄형 질문에서 개방형 질문으로 전환하기 "네/아니요"로 끝나는 질문은 대화를 끊습니다. 대화의 여지를 주는 질문을 던지세요.
예: "설교 어땠어?"(X) → "오늘 설교 중에 단 한 단어만 기억에 남는다면 그게 뭘까?"(O)
예: "공부 열심히 했니?"(X) → "이번 주에 너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은 뭐였어?"(O)
→침묵을 견디는 기술 (Wait & Listen): 아이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기까지는 어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질문을 던진 후 최소 5초에서 10초는 눈을 맞추며 기다려주세요. 그 침묵은 어색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②변화의 시작: 교사, 스스로 역량을 깨우다
● The Vibe
"다 맞는 말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깨부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사 공동체의 체질 개선입니다. 아이들이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 교사가 먼저 아이들의 세계에 접속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How to Set
→함께 읽고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 주일 아침의 짧은 교사 회의를 '보고'가 아닌 '배움'의 장으로 바꾸십시오. 청소년 심리, 최신 트렌드, 혹은 다음 세대 사역에 관한 책 한 권을 선정해 매주 한 챕터씩 읽고 나누십시오. 머리를 맞대고 공부할 때 "요즘 애들은 왜 이럴까"라는 탄식은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이해로 바뀝니다.
→아이들의 문화를 구독하는 '유튜브 스터디': 아이들이 열광하는 유튜버가 누구인지, 어떤 밈(Meme)이 유행하는지 교사들이 함께 시청하며 스터디하십시오. 그들의 문화를 저급하다고 치부하는 순간 대화는 단절됩니다. 아이들의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은 곧 선교지의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사역의 기술을 연마하는 '워크숍': 공감 대화법, 효과적인 공과 진행법 등 실질적인 기술을 연습하십시오. 사랑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지만, 전달은 정교한 기술로 이루어집니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기도 공동체': 아이들의 변화가 더뎌 지칠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교사들만의 밀도 있는 기도 모임이 필요합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동료애가 생길 때, 사명감의 유통기한은 늘어납니다.
③ Governance: '염려'보다 '실행'이 앞서는 거버넌스
● The Vibe
관리와 행정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역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의 논리가 사역의 본질을 압도할 때, 부서는 생명력을 잃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게 됩니다.
■ How to Set
→'안 된다' 대신 '대안'을 말하는 규칙: 회의실에서 "안 된다"고 말하려면 반드시 그 우려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가져오는 규칙을 만드십시오. 라면 국물이 걱정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니라, 다 같이 치우는 5분의 규칙을 만들면 됩니다. 사고가 걱정된다면 안전 가이드를 정하면 됩니다.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격려의 문화: 교사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수평적 분위기를 조성하십시오. 어떤 제안이 나오든 우선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대단해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네요"라는 지지는 교사를 춤추게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비난이 아닌, 실행을 위한 '보완점'을 함께 찾는 동료애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타이밍의 약속: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제안이라도 "안 된다"고 잘라 말하지 마십시오. 예산이나 인력의 문제로 지금 힘들다면, "언제쯤 가능할지"에 대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기록해두십시오. 사역자는 그 제안을 잊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해야 합니다.
→전원 참여보다 중요한 '소수의 실행': 모든 교사가 다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단 몇 명이라도 마음을 모아 할 수 있다면 일단 시작하고 보십시오.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역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작게라도 시작된 그 걸음이 아이들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결국 나머지 분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일단 이번 주에 딱 한 번만 해봅시다"라는 지지가 부서를 다시 뛰게 합니다.
➃Language & Partnership: 사역자와 교사의 팀플레이
● The Vibe
‘우리교회’ 청소년사역의 주체는 ‘교사’입니다 사역자는 2~3년이면 떠나가는 '손님'일 수 있지만, 교사는 10년, 30년 부서의 생존을 온몸으로 지켜온 '주인'입니다. 이 사실을 사역자와 교사가 인정하는 것에서 팀플레이가 시작됩니다.
사역자는 부서 안에서만큼은 본인이 '담임목사'라는 영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교사들이 현장에서 마음껏 은사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서의 사역은 사역자 한 명의 화려한 열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역자와 교사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며 정교하게 호흡을 맞춘 팀플레이 위에서 비로소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 How to Set: 서로의 손과 발이 되는 동역의 기술
→한국 교회 현실에 기반한 상호 이해: 교사는 사역자의 물리적 한계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주일 사역 외에도 평일의 행정 업무, 여러 부서의 중첩된 사역, 담임목사님의 목회 보좌 등 사역자가 청소년부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한국 교회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사역자가 모든 것을 해주길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머물기보다, 교사가 사역자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함께 뛰는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역자가 바빠서 챙기지 못하는 빈틈을 교사가 메워줄 때, 부서의 사역은 비로소 사각지대 없이 작동합니다.
→교사는 '현장 안테나', 사역자는 '영적 해결사': 아이들의 복잡한 가정형편, 친구 관계에서 오는 말 못 할 고민, 갑작스러운 사고나 긴급한 기도 제목을 가장 먼저 파악하는 이는 매주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현장의 교사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심방하고 파악하는 '현장 안테나'가 되어야 합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사역자에게 리포트하여 공동 심방을 요청하거나 영적인 가이드를 구하는 '사역의 길잡이'가 되어주십시오. 사역자가 적재적소에 영적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팀워크의 증거입니다.
→은사에 따른 권한 이양과 신뢰의 분배: 사역자는 모든 결정을 독점하려는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부서 내에 찬양, 행정, 상담, 문화 프로그램 등 특별한 은사와 열정을 가진 교사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사역의 일정 부분을 완전히 맡기십시오. 교사가 단순히 사역자의 지시를 따르는 보조자가 아닌, 자신의 은사로 부서를 세워가는 '사역의 주체'로 설 때 공동체는 비약적으로 성장합니다. 사역자는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 뒤에서 응원하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최종적인 책임을 져주는 든든한 '실드(Shield)'이자 '서포터'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역 중복을 막는 '10년 대계'의 수호자: 사역자가 바뀔 때마다 부서의 커리큘럼이 통째로 흔들리는 교육적 낭비를 멈춰야 합니다. 전임 사역자가 공들여 쌓아온 제자훈련이나 성경 공부의 맥락을 무시하고, 후임자가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거나 이름만 바꾼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아이들과 교사들을 지치게 할 뿐입니다. 사역자와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부서의 10년 대계'를 세우십시오. 사역자가 바뀌어도 부서가 지켜온 핵심 가치와 철학이 일관되게 흐르도록 그 역사적 맥락을 지탱하는 중심추는 결국 교사의 몫입니다. 사역자의 신선한 통찰력과 교사의 묵직한 경험이 조화를 이룰 때, 한 세대를 관통하는 지속 가능한 사역의 길이 열립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비천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2-13)
● 본질의 인사이트: 기도에 '실력'을 더하고, '실행'으로 사역하라
청소년 사역의 정점은 가르치는 권위자가 아닌, 아이의 곁에서 끝까지 보조를 맞추는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며 복음의 길을 걸었듯, 교사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아이들의 닫힌 입을 여는 '공감 대화법'과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문화 스터디'로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역자와 교사는 서로를 손님이나 관리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메우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묶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의 논리와 사고의 염려에 갇힌 '불가능의 회의'를 깨부수고, "일단 이번 주에 딱 한 번만 해보자", “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자”는 무조건적인 실행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오늘 내딛는 한걸음, 그 작은 실행이 결국 부서 전체를 다시 뛰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 Food for Thought
→[역량의 업그레이드] 당신은 나이와 경험 뒤로 숨어 성장을 멈춘 교사입니까, 아니면 아이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오늘도 공감의 기술을 공부하는 학습자입니까?
→[협력의 시너지] 사역자와 교사는 서로의 한계를 비난하는 감시자입니까, 아니면 아이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현장 안테나와 영적 해결사로 호흡을 맞추는 원 팀(One Team)입니까?
→[실행의 용기] 우리 부서의 거버넌스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 방어막입니까, 아니면 "일단 작게라도 시작해보자"는 도전이 살아있는 복음의 전초기지입니까?
● 닫는 묵상
사역은 완벽한 계획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작은 실행들이 모여 완성됩니다. 우리가 라떼의 권위를 내려놓고 공감의 실력을 갖추며, 사역자와 교사가 신뢰의 팀플레이를 펼칠 때 교회는 비로소 정체된 조직을 넘어 살아있는 유기체가 될 것입니다. 염려의 벽 앞에 멈춰 서지 마십시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떨치고 주님의 이름으로 내딛는 그 한 걸음이, 오늘도 심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닿는 유일한 생명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