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마음 있는 일

일에 마음 없는 일 [도서]

by 윱인

나는 작년 10월부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리고 올해 중반부터는 '기자'의 형태로 아트인사이트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 대학교 선배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선배를 만났을 때마다 나는 아트인사이트에 올린 내 글들을 가끔씩 보여줄 때가 있다. 선배에겐 총 두 개의 글을 보여줬는데, 하나는 에디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문화 초대를 받았던 한 연극에 대한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기자가 되고 나서 비교적 최근에 기고했던, 뮤지컬에 대한 글이었다.


선배가 내게 말해준 피드백은 이러했다. 즉, '한 편의 논문과 같았던 지난 번의 글과 달리, 최근의 글은 확실히 더 읽기 쉽고 재밌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에 관한 한 가지 TMI를 덧붙이자면, 나는 지난해 철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활동 초반의 나는 패기 넘치게도 내 석사 졸업 논문의 내용을 장장 8회차에 걸쳐 요약 및 약간의 해설을 덧붙인 글을 에디터로서 기고해왔다.


비로소 전문가로 대우받기 시작하는 '박사 학위'도 아닌, 석사 학위를 갓 받은 나는 말 그대로 당시 독자 입장에서 읽기 쉬운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은연중에 읽기 쉬운 글은 어려운 글보다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여겨왔던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배운 사람의 고집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부끄러운 선입견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쉽게 읽히는 글이라 해서 반드시 그 글이 쉽게 쓰인 글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서로는 별개의 일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학술적인 주제 이외의 일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기회는 뜻밖의 한계상황에 찾아온다.


그건 바로 에디터 활동 기간이 아직 남았는데, 흔히 말해 글의 소재가 고갈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마감 기간이 임박했지만,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이 플랫폼을 통해서 표현해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글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선배에게 받은 피드백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선배에게 피드백을 받고 나서 나는 곧바로 어떤 발견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배에게 나의 이야기를 다시 했다. 그건 바로 '나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 깊숙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나 같은'에 함의되어 있는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발견을 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비로소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기를 '진중함과 유쾌함 사이'에 있는,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성격도 능글맞고 장난끼가 많은 활달한 아이였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활달함은 마음 내부로 들어가 진지함이라는 성격을 얻게 되었다. 20대에는 너무 진지하기만 하다가, 그 진지함이 너무 과할 땐 반대급부로 너무 유쾌하기만 해서 고민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자라는 직함을 얻은 직후,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 미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대표님께서 내 지원서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고 하셨다. 그건 바로 아트인사이트 플랫폼이 내게는 '정신적 헬스장'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표현했던 부분이었다.


글쓰기란 과연 나에게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선 저자 김지원도 그러하듯, '고생스럽지만 막상 쓰고 나면 후련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에 대해 내가 품었던 나의 마음이었다.


이때까지 글 속에서의 나는 '진지한 어투'로 글을 채워왔다. 무언가 정제되고 완성된 어투와 구조로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모종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유쾌한 글을 써내기엔 스킬도, (저자의 말마따나) 기세도 부족했다. 그런데 스킬 뿐만 아니라 기세에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때까지 써온 나의 아트인사이트 글들을 읽다 보면 부끄러운 순간이 (자주) 찾아오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씩 바라왔고 또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의 글쓰기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도서 <일의 마음 없는 일>은 경향신문 뉴스레터에서 '인스피아'를 기획하고 발행해왔던 김지원 기자가 '자신이 읽고 싶고 또한 쓰고 싶은 글'이라는 대주제 하에서의 글에 대한 단상을 다룬 책이다. 책은 아주 얇고 크기가 작은데, 오히려 책의 작고 얇음이 저자의 가치관을 더욱 심플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글쓰기의 주제 혹은 어투에 대해 생생함이 담긴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구조를 처음부터 다 잡아놓고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해도, 글은 마치 저자의 비유처럼 '생명체'와 같다. 글을 쓰다 보면 구조를 쌓아나가다가도, 결정적인 '킥'을 위해 그 한 끗을 붙잡아내려면 그 구조를 어쩔 땐 모조리 부수고 시작하는 것을 감행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고백하자면, 나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글을 주기적으로 쓰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그 매체를 소개하기 보다 (저자의 방식처럼) 그 매체를 경유하여 도출된 나의 생각과 견해를 글에 주로 할애하여 쓴다. 소개 글은 정보 풍요의 시대에 쉬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저자에게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통해 발현된 나의 단상이라는 또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조금 더 유익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에 마음 없는 일'이라며 이 책에 대한 제목(동시에 주제)을 달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마음 없음'의 단어 속에서 저자가 글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과 진정성이 반어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나진다. 저자가 바란 것-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가 새롭고 엉뚱한 일을 수상한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진지함과 유쾌함 사이에서 곡예를 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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