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새삼 세워 둔, 작다면 작고 거창하다면 거창한 목표가 있다. 바로 배달 음식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요리하기가 너무 귀찮다면 음식을 포장해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저렴하게 사려고 쌀은 10kg로 덥썩 사버렸지만 최근에 밥을 손수 해먹는 빈도가 늘어난 덕에 쌀의 양은 부쩍 줄긴 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자취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내가 집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어설프다고 느낀 사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쌀은 10kg씩이나 사놓고는 쌀통을 잘못 골라 너무 조그만 걸 여러 개 사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일명 쌀 소분 대작전이 펼쳐졌다. 물론, 쌀통에 쌀을 넣으면서 여러 번 통을 엎었고, 그로 인해 집은 난장판이 되었다. 단전에서부터 깊은 화가 올라왔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화를 내는 사람도, 치워야 하는 사람도 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찌저찌 쌀을 치우곤 (지금도 어쩌다 가끔씩 쌀이 꼭 한 톨씩 발에 밟히긴 하지만) 밥을 지어 먹어왔다. 내가 보기에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게 되는 것에는 집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다급한 피곤함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마련했다. 그건 바로 비상 간식을 구비 해두는 것이다. 긴급한 허기짐을 약간의 애피타이저(?)로 해결해놓고 나면, 그때부터 밥을 차릴 여력이 생긴다.
그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결과, 나는 최소 주 3회 이상 배달 음식을 시켜 먹던 과거에서 벗어나 최대 주 1회로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그래, 그 템포대로라면 일요일 오늘도 점심 밥을 간단히 차려 먹고 밖을 나서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주말의 끝자락을 알차게 보내면 된다는 완벽한 계획 속에 나는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밥을 지으려고 그 문제의 여러 쌀통 중 하나를 꺼내어 쌀을 씻으려는 순간, 흰 쌀과 대비되는 미상의 검정 물체 하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씻지 않은 쌀에는 먼지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지 하고 넘겼지만, 그 검정 물체를 분리해내려고 할 즈음 두 가지 추가적으로 경악스러운 사실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하나는 그것이 단순히 먼지가 아닌 일종의 쌀벌레 혹은 권연벌레라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경악스러운 사실인데) 그것이 쌀통 안에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쌀통에 권연벌레가 있게 된 경위를 추적해보았다. 지금이 습하디 습한 장마철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권연벌레가 좋아하는 곡물 가루 같은 것들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라고 지신했는데, 그 대책 없는 자신감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올해 여름 장마철 동안 나는 권연벌레와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지식을 빠삭하게 습득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것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것이 '권연벌레'인 줄도 몰랐다. 그러다 이 동글동글하고 거무스름한 벌레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주로 그것은 곡식의 부스러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곤 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우리 집 주방에서 보이는 모든 가루란 가루는 전부 쓸고 닦아 그 존재 차제를 전부 없애버렸다. 그 뒤로 날씨가 점점 서늘해짐에 따라 그것의 정체도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 그것이 또?' 나타난 것인가 당황해하다가, 엄마 찬스를 사용하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경위를 설명하자 엄마는 내게 아주 뜻밖의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거 쌀통에 공기가 안 통해서 그래."
나는 습도만 조절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 빌어먹을 작디작은 쌀통에 쌀을 꽉꽉 채워 담아 놓았고 그 안에 공기가 통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 된 것이었다. 당연히 온도도 중요했다. 그래서 쌀은 쌀통에 넣어두려면 여유가 있게 넣어 두어야 하고, 냉장고나 시원한 곳에 놔두어야 했던 것이었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밥맛이 떨어졌지만, 나머지 멀쩡한 쌀로 밥을 지어 먹은 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뭐든지 여유 공간이 없으면 썩는구나.'
작디작은 쌀통에 꾹꾹 담아 넣던 그 행동에는 분명히 잘 살고 싶었던 나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또 마주하게 된 지금은, 채우려는 관성이 생길 때마다 한 번씩은 비워 내려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일요일 오후였다.
2026년은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