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야기쿠스들의 이야기 한 판

뮤지컬 판 [공연]

by 윱인

사람들은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모여 이야기할 장소, 어느 정도 모인 인원, 이야기 주제 이 세 요소만 있다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붙여보았다. 이름하여 '호모 이야기쿠스'. 이 명칭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는 없다. 다만, 비전문적이지만 실생활에 근거한 나의 인류학적 고찰에 의해 붙여본 명칭이다.


뮤지컬 <판>은 조선 시대 후기, 세상을 풍자하는 소설을 낭독하는 전기수 호태와 그처럼 되고 싶은 양반 출신 달수,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짓고 함께 나누는 매설방 사람들에 대한 유쾌하지만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그러니 이 극은 이야기를 낭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종의 메타-이야기 극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에야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에는 자유가 나름 보장돼 있다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금기가 강해질수록 그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일탈의 움직임도 더 강해지는 법이다. 자유에 대한 욕구는 커지지만 그것을 드러낼 상황은 주어지지 않을 때, 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대체재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풍자'다.


이야기는 분명 가상의 것이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영감을 받고 현실로부터 비롯된 것이어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상의 이야기로부터 해방의 느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가상의 존재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20260110194105_xdspsrtr.jpg


이에 대해 아도르노라는 철학자의 주장을 가져와 보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볼 수 있다.



첫째, 예술은 현실에서 억압된 소망을 표현할 수 있다.

둘째, 예술적으로 표현된 또 다른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여, 그러한 세계도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일 매설방에서 들려오는, 그리고 쓰이고 낭독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시대를 살아간 평민들의 애환과 바람이 담긴 이야기일 것이다. 매설방의 이야기들은 주로 나라에서 허용하지 않는 금지된 이야기들을 다룬다. 파렴치한 양반과 백성들의 고된 삶엔 관심이 없는 사대부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욕망과 같은 것들 말이다. 현실에서 표현하는 것이 금지된 이야기들을 발화해내는 것으로부터, 평민들은 그들의 억압된 소망을 표현하게 되고 그로부터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 극 후반부에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덕이가 창작한 소설은 줄타기하는 것이 좋고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의 욕망'을 다룬 이야기이다. 덕이의 소설에서는 여성에게 많은 족쇄를 가했던 당대 사회의 금기에 맞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말고 당당히 해내라는, 덕이의 바람이 담겨 있다.


나아가, '현실에서 억압된 소망의 표현 그리고 더 나은 세계를 열어보임'으로 정리될 수 있는 예술, 여기서는 '이야기'가 가진 효과는 이 극에서 인형극이라는 형태를 통해 더 극대화되기에 이른다. 요망진 전기수 호태와 춘섬이 전하는 내시와의 비밀스런 사랑 이야기, 그리고 덕이가 지은 소설 속 줄타기를 좋아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배우들의 섬세한 손끝에서 소박하고도 유쾌한 한국의 해학적 정서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단연 <판>이 보여주는 묘미는 희대의 전기수 '호태'가 뻐꾸기(관객에 대한 애칭)들의 투표에 의해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날 호태 역을 맡았던 김대곤 배우의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나왔고, 나중에는 그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왔다. 4명의 배우들의 모습만 보고 투표를 한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배우가 들고 있는 판넬을 뒤집어 공개되는 것이 그날 호태가 낭독해야 할 즉석 이야기의 테마다. 게다가 관객석에서 즉석으로 두 가지의 제시어를 받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아니, 이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김대곤 배우는 실로 대학로의 전기수였다. 처음엔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지만, 그날의 테마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제시어를 가지고도 그는 즉석에서 그것도 2분 가량의 이야기를 만들어내 뻐꾸기들의 힘찬 박수를 자아냈다.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개 연극이나 뮤지컬에선 그날의 캐스팅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연기 호흡을 보기 위한 것이 소위 회전문 관객을 이끌어내는 가장 주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뮤지컬 <판>에서는 관객도, 심지어 배우들도 이야기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애드리브를 현장에서만 알 수 있게 되니 그것 또한 회전문 뻐꾸기들을 모이게 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20260110195744_tcnunwha.jpg


매거진의 이전글시지프스와 뫼르소 그리고 우리 사이의 기묘한 연결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