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나에겐 한 가지 (비공식적이지만 꽤 용한) 공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보게 되는 공연=좋은 공연'이라는 것이다. 그 공식은 나름 10년 동안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기에 이제 그 공식은 나에게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정립이 된 공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픔이나 컨디션 난조를 의도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압도되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공연을 보게 되는 과정으로 귀결되는, '일종의 의도치 않음'이 중요하다.
나는 관람 전날 과음으로 인해 공연 당일 오후까지 숙취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당일에 보게 될 뮤지컬 <몽유도원>의 제목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 줄다리기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아픔에 압도되어 있다가도 따뜻한 차로 겨우 몸을 달래고 극장 안을 들어가니, 공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되었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도미 부부 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두면서 2002년에 처음으로 극을 올렸으며, 이후 24년이라는 긴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후에 리부트된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다.
철학을 전공했던 대학생 시절, 나는 철학과 대학원의 세부 전공을 결국 서양 철학(그중 독일 철학)을 택했다. 하지만 학부생 때 들었던 동양철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과제로 내주셨던 주제가 독일 철학을 선택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과제의 형태는 대조되는 두 철학자의 사상 중 하나를 고르는, 이른바 양자택일의 형태였다. 과제의 내용은 '도(道)가 사물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지'를 택해서 논하라는 것이었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이는 주자라는 학자의 입장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양명이라는 학자의 입장을 택할 것인지 고르라는 의미이다.
그 당시에 나는 주자의 입장을 골랐다. 하지만 주자를 택한 건 그의 사상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기 보다는 오히려 양명의 입장에 깊은 공감이 되었기 때문에 그 입장을 택했을 때 자칫 귀결될 수 있는 문제를 경계하고자 주자의 입장을 소극적으로 택한 것이었다. '모든 만물의 진리는 내 마음속에 있다'라고 주장할 경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 주관적 진리에 매몰되어 각자의 마음속 진리만을 관철하게 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마음에 남긴 채 여러 해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마침내 양명의 주장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의 진리는 내 마음속에 있다'라는 문장에 담긴 함의를 나의 언어로 재정의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진리가 내 마음'으로부터' 나왔을 때에야 그것은 비로소 나에게 진리로 자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정말 싫어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 전공을 따라 서양의 나라로 가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떠난 프랑스 교환학생 생활은 행복했을까? 일정 부분은 그러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는가'에 있기보단, 내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뮤지컬 <몽유도원>이 주자며 양명의 입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아이스 브레이킹 같은 이 전초 작업이 뮤지컬 <몽유도원>의 핵심을 관통하는 '동양적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해볼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면에서 서양은 동양보다 많은 것에 대하여 우세의 위치에 있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서양이 근대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에 따라 수많은 나라에 식민지를 세우고 자신들의 문화를 주입에 가깝게 전파해온 것에 기인할 것이다. 그를 놓고 봤을 때 드는 생각은, 서양도 동양과 많은 문화적 교류를 취해왔고 이를 자신들의 많은 문화 속에 녹여 내왔지만 그들은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동양의 문화를 원할 때만 선택적으로 그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양은 그와는 다른 궤적을 그려오며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적 성취를 이루어왔다. 한때 동양은 서양의 문화 없인 자신의 문화를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겪은 대부분의 역사가 침탈과 수탈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은 그렇기에 서양이 절대적 악이며, 동양은 그로부터 소위 '오염되지 않은' 동양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지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위 오리엔탈리즘, 즉 서양과 동양을 이분법적인 구도로 놓고 동양을 타자화하며 동양이 가진 신비성을 왜곡되게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디는 동양 특히 여기서는 한국의 역사가 서양의 문화권으로부터 위압에 가까운 영향을 받아왔음에도, 그로부터 서구와의 어떠한 형태의 교류이건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 안에서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적 발전을 이뤄내 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자기-인식(self-knowledge)의 정립 가능성이 뮤지컬 <몽유도원>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뮤지컬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서양에서 출발한 공연 형태이다. 한국 뮤지컬의 역사 역시 그 출발은 서양의 음계를 가지고 서양의 이야기와 역사를 노래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딱히 부정할 필요는 없는데, 그것 역시 한국의 역사처럼 한국 뮤지컬 역사의 궤적을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지컬 <몽유도원>은 동양의 역사가 진행되어온 궤적을 보여주면서도 동양만이 지닌(특히 한국 고유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고유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해낸다.
그렇다면 뮤지컬 <몽유도원> 안에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그것은 어렵지 않게 답해볼 수 있다.
첫째, 서양 클래식 선율에 리드미컬한 국악 장단이 어우러지고 서양의 악기가 연주하는 선율에 동양의 악기 소리가 한 겹씩 쌓이는 방식을 택한다.
둘째, 판소리, 정가, 성악, 뮤지컬 등의 다양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배우들이 이뤄내는 어루어짐은 고유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어우러지는 화법을 청각적으로 표현해낸다.
셋째, 가득 채워내는 것이 아닌 덜어내는 방식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을 '수묵화'라는 시각적 언어로 구현해냄으로써,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연출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몽유도원>의 마지막 곡 '다시 도원으로'의 가사 일부분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뮤지컬 <몽유도원>이 보여주고자 하는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유한 세계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해 이분법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사계절의 '변화'나 빛과 어둠이 주는 '대조' 등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삶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자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연이 종료된 후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날 공연을 본 다른 관객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 오늘 <무릉도원>이라는 작품을 봤는데 재밌더라. 아, <무릉도원>이 아니라 <몽유도원> 말이야." 지극히 지당한 말이었다.
바람이 내게 물어오네 무엇이 그리 아팠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하네 모든 것이 다 꿈이었다고
달빛이 조용히 속삭이네 무엇을 그리 사랑했냐고
나는 웃으며 노래하네 모든 순간 다 꿈이었다고
(ㆍㆍㆍ)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네
산다는 건 모든 계절을 느끼는 것
산다는 건 빛과 어둠으로 가는 것
산다는 건 나만의 도원을 찾는 것
(ㆍㆍㆍ)
바람이 다시 불어오네 어떤 꿈을 꾸었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하네 사랑이라는 꿈을 꾸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