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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Oct 01. 2023

영화 ‘거미집’, 예술을 검열하던 시대에 대한 풍자

'걸작'을 만드는데 미쳐버린 김 감독의 이야기

*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멋있던가. 영화 ‘거미집’은 자신이 만드는 영화를 ‘걸작’으로 완성하는데 미쳐버린 어느 영화감독의 얘기이다. 시대 배경은 영화에 대한 정부 관리들의 사전 검열이 있었던 1970년대. 영화 ‘거미집’의 촬영을 막 끝낸 김  감독(송강호)에게는 영화의 결말 부분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 딱 이틀이면 돼!” 이틀의 시간 동안만 다시 촬영을 하면 전무후무한 걸작이 태어날 것이라고 김 감독은 흥분한다. 그래서 제작사 측에게 추가 촬영을 요청하지만 제작자 백 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이미 대본의 내용이 반체제적이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심의에 걸린 상태인데 대체 어떻게 하려느냐면서 김 감독을 말린다. 그러나 이미 걸작 만들기에 미쳐버린 김 감독은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의 지지를 얻어내서 가까스로 촬영에 들어간다. 그런데 톱스타들을 갑자기 불러 모으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이틀간 촬영을 할 것이면서도 하루만 촬영하면 된다고 거짓말을 해서 우격다짐 식의 촬영에 들어간다.


'거미집' 공식 포스터


이 영화는 ‘거미집’을 걸작으로 만들기 위한 김 감독의 집념이 온갖 난관에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의 상황, 그러면서도 끝내 걸작을 만들어내는 투혼에 대한 얘기이다. 김 감독의 하소연처럼 그의 주변에는 온통 방해들만 있다. 제작사 백 회장은 촬영장에 들이닥쳐서 중단하라고 소리치고, 억지로 모인 배우들은 불만을 갖고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빌런은 정부의 검열. 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분류하게 하는 이유는 영화를 검열하는 시대 상황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제작사 백 회장이 항상 걱정하는 것은 문공부(그 시절에는 ‘문화공보부’가 있었다) 심의에 걸리는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김 감독은 계속해서 추궁당한다. 실제로 영화에는 문공부 관리들이 등장한다. 박 주사(장남열)는 영화 내용의 사전 검열을 위해 촬영 현장을 찾았다가 술만 마시고 있고, 문공부 실세 김 국장(장광)은 아예 카메라 옆에 자리하고 술을 마시면서 촬영을 지켜본다. 김 국장은 애당초 영화가 반체제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문제를 삼았던 인물이지만, 결말을 ‘반공영화’로 만들기 위해 다시 찍는 것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 촬영을 격려하는 입장에 선다. 마지막에 치정 살인으로 시신과 집을 불태우는 장면도 ‘빨갱이들’을 모조리 불태우는 은유라고 믿을 정도이다. 예술에 대한 검열이 위세를 떨쳤던 그 시절, 영화인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면서 영화를 제작해야 했던 현실이 생생하게 풍자되고 있다.

'거미집' 스틸컷


이 모든 방해들이 한데 모여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 아수라장을 뚫고 김 감독은 끝내 ‘거미집’을 걸작으로 만들어 내고야 만다. 오직 자신이 꿈꾸는 걸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친 듯이 영화를 찍는 김 감독은 자기를 둘러싼 온갖 방해들을 이겨내며 꿈을 이루는 인물이다. 


'거미집' 스틸컷


관객들이 보는 ‘거미집’ 속에 영화 속에서 촬영하는 또 다른 ‘거미집’을 보게 된다. 그러니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맛이 있다. 영화 속에 나오는 1970년대의 ‘거미집’은 흑백 화면인 데다가 배우들의 억양 또한 ‘대한뉴스’ 판이라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마침 그 시절의 노래들이 배경으로 깔리는 것은 영화 ‘밀수’를 닮았다. 영화인들이라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볼 영화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몰입해서 볼만하다. 다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며 지루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호불호가 어느 정도 갈리는 것은 피할 수 없겠다. 그래도 여러 영화들이 개봉된 이번 추석 연휴에 이런 독창적인 구성과 스토리의 ‘우리 영화’에는 응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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