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Dec 24. 2017

고통을 이겨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제가 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사우, 2017)의 내용을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내가 니체를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가장 외롭고 힘들 때였다. 정치적 환경 때문에 방송 일이 다 끊겼을 때 나는 혼자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그렇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니체의 말들은 가라앉았던 나의 내면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자. 아니면 더 이상 살지를 말든가.”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그리하도록 하라!”



삶이 어렵고 힘들 때, 니체를 만나


그 뒤로 니체를 계속 읽어갔다. 내용이 난해해서 해설서를 뒤지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는 다른 철학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강생이 니체 강의실을 찾았다. 니체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양 철학자로 꼽힌다. 대부분의 철학서가 그렇지만 니체를 읽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니체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온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들 사는 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고 외롭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이 니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고통을 극복해나갈 힘과 용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니체를 읽으면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나 역시 니체로부터 많은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니체는 “나는 고독이 필요하다”며 “보라, 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아주 거센 바람처럼 저들의 머리 위 높은 곳에 살고자 한다. 독수리와 이웃하고, 만년설과 태양과도 이웃하면서 말이다. 거센 바람이라면 그렇게 산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가 우리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철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철학자다. 친구들도 그의 새로운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쓴 책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인기 있는 저자가 아니었기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낸 후에는 모두 자비 출판을 해야 했다. 그 자신이 “나 자신의 때도 아직은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죽은 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라며 자신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가서야 가능할 것임을 예언했다.


한편 그의 고독한 작업은 시력과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말년에 니체는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고, 그의 말기 저작들은 병마와 싸우면서 나온 것이다. 니체는 1889년 초 마지막 작품인 『디오니소스 송가』를 완성하고 최종 교정을 마친 직후 토리노의 알베르토 광장에서 쓰러졌다. 숙소를 나오다가 난폭한 마부 하나가 말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는, 통곡하면서 달려가 말의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뒤 니체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렇게 12년 동안 어머니와 여동생의 돌봄을 받다가 1900년에 생을 마감한다.


그가 병원에서 쓴 자전적 글들을 모은 『나의 여동생과 나』가 1923년에 출판되었다. 그 글에서 니체는 자신의 생을 “‘자유’와 ‘숙명’이 벌이는 결투였고, ‘신이 되려는 나의 욕망’과 ‘한 마리 벌레로 남아야 할 숙명’이 벌이는 결투”였다고 회고한다. 그에게는 삶이 곧 결투였던 것이다.


하지만 병마와 고독의 고통 속에서도 니체는 자신의 삶을 긍정했다. “힘들게 위액을 토해내는 사흘 동안 편두통의 고문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자신은 “명석한 정신을 유지했으며, 사물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숙고했다”라고 말한다. 건강한 상태였더라면 그렇게 숙고하지 못했을 것이고 충분히 예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병이 자신을 깨어 있게 했다고 받아들인다.


니체에게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병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걸리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병에 걸릴 수조차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병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었다. 니체는 견디어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저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철학의 불덩어리 속에서 그렇게 스러졌다.


니체의 삶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들이 단순한 허언이 아닌, 삶 그 자체였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니체에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니체의 힘은 철학과 삶의 일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니체를 읽으며 생각했다. 나의 어려움이 그렇게 엄청난 것일까. 그것은 과연 견디어낼 수 없는 무엇인가. 니체는 그 고통스러운 병마와 고독 속에서도 마지막 불꽃을 피우지 않았던가. 철학을 향한, 아니 자신의 삶을 향한 니체의 투혼은 나의 내면을 일깨웠다. 너도 일어나라고.


망치를 들고 우상을 파괴하는 철학자


고통을 극복해가는 삶의 의지, 우상을 파괴하는 전복적 사고의 힘,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철학자로서 니체의 매력은 발산된다. 1889년에 출판된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의 철학적 자서전과도 같은 책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니체는 자신의 저작들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 『바그너의 경우』 같은 저작에 대한 니체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껏 덕 있다고 존경받았던 인간 종류에 정반대 되는 본성을 지닌 존재다. (……) 인류를 ‘개선’한다는 따위는 나는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새로운 우상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우상의 파괴, 이것은 이미 내 작업의 일부다."


니체는 1889년에 『우상의 황혼』을 출판했는데, 정확한 제목은 『우상의 황혼 또는 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이다. 흔히 니체를 가리켜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니체는 이 책이 “모든 가치의 전도의 1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 숭배되어왔던 서양의 모든 가치를 전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보다 더 내용이 풍부하고 더 독보적이며 더 파괴적인 책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니체가 말한 우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 표지에 쓰여 있는 우상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이제껏 진리라고 불리던 모든 것이다.” 니체가 망치를 들고 부숴버린 것들은 서양 철학과 서양 정신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온 우상들이었다.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의 이성 중심주의 철학 전통을 파괴하고, ‘이웃 사랑’을 내건 그리스도교의 위선을 고발하겠다며 그는 망치를 든다.


그렇게 니체는 서양의 거대한 정신과 문화에 홀로 맞서는 도발적 전복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열정적인 작업을 통해 절규와도 같은 저작을 내놓은 그의 삶은 가히 혁명아적이었다. 그는 굳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 매달리지 않았다.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가장 고독한 가운데 최고로 각성될 수 있으며, 그럴 때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니체는 보여주었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던 니체의 말은 그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망치를 들고 2000년 넘게 이어온 서양의 정신을 파괴하겠다고 나선 두려움 없는 용기. 그런 니체를 읽으며 우리도 덩달아 용기를 갖게 되는 이유다.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와 나의 가치가 충돌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럴 때 시대와의 불화가 두렵거나 불안하다면 니체를 떠올릴 일이다. 그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서양 정신을 전복시키겠다고 망치를 들지 않았던가. 아무도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던 시절에 말이다.



외로웠을 때, 니체는 나의 동지였다


나는 20여 년 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이 일 은 무척 변덕스럽다. 잘 나갈 때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일을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잊힌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치적으로 배제되는 인물이 되어 방송 일이 거의 끊겼을 때, 내가 이렇게 사라져 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것 같은 시절이었다. 그 무렵 혼자 독서실 구석에 처박혀서 니체를 읽었다.


그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누구보다 고독했던 니체로부터 발견한 강한 힘과 용기였다. 니체는 살아가는 데 고독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은 고독할 때 가장 깨어있고 충만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고독했을 시간에 그는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외롭다는 것은 생각만큼 나쁜 것이 아니다. 외로운 사람이 약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니체는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했던 둘도 없는 동지였다.                                                                                                                                                                                                                                                                                                                                                                                                                                                                        

당신의 영혼을 흔들고 찌를 12권의 책
읽고 사유하는 사람만이 싸우고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진실을 지키고 존엄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한 지식인의 자기 탐구 기록이기도 하다. 책 읽는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위대한 사상가와 온몸으로 만날 때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