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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 May 02. 2019

호모데우스_유발하라리 [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 책 내용과 개인적인 생각, 의견이 섞여있습니다.


4. 스토리텔러


약 7만 년 전, 인지 혁명 - 상상 속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공유 : 지엽적인 지역에 한정

-> 약 1만 2,000년 전, 농업혁명 - 상호 주관적 연결망 확대, 강화 : 뇌의 데이터 처리 능력에 의존하는 한계

-> 약 5,000년 전, 수메르인의 문자와 돈의 발명 : 인간 뇌의 데이터 처리 능력의 한계 극복, 세금 징수 가능, 복잡한 관료제와 거대 왕국 건설


이집트의 파라오는 생물학적 몸, 감정 등이 있었지만 이것은 중요치 않았고 상상 속의 파라오가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파라오가 가만히 있어도 수천 명의 관료들이 시스템화 된 관료제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허구적 실체의 존재를 더욱 쉽게 믿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실제를 기술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점점 실제를 고쳐 쓰는 강력한 방식이 되었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공식 보고서와 객관적 실체가 충돌할 때 공식 보고서가 더 빠르고 멀리 사실로서 퍼져나간다. (현재 성행되는 가짜 뉴스는 그 예시로 잘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에 맞춰 이야기를 바꾸는 대신 이야기에 맞춰 실제를 바꾸게 되는 것이 현실. 성경은 문자 기록에 힘입어 널리 퍼졌다. 아무리 성경에 실제와 다른 내용이 기술되어있더라도 성경의 내용을 실제라 믿으며 그 안에서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 (무교인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성경 속 말들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실이라 믿고 따른다는 것이 놀라울 때가 많다.) 


허구는 우리의 협력을 돕지만 허구는 협력의 목표도 결정한다. 즉, 허구적 실체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 협력 시스템이 이용된다는 것. 기업이라는 허구적 실체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직원들은 밤낮없이 일하며 불균형한 영양 섭취를 하고 있. 실제 살아있는 직원들은 고통을 받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업의 관점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실제 하는 실체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으로 그 실체를 구분할 수 있.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며 꼭 필요한 것. 하만 이 허구적 이야기들은 도구일 뿐,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됨. 허구적 실체가 목표가 되어 그 목표를 이루고자 실제적 실체가 고통받아서는 안됨.


5. 뜻밖의 한쌍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 이론뿐만 아니라 허구적 실체에 대한 믿음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 과학은 상호 주관적 실재를 없애기보다 더 강화시킬 것이다. 컴퓨터, 생명공학 등으로 인해 허구와 실제의 차이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과 종교는 완전히 상반된 관계 같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종교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 내리면 안 됨. (252p. 다시 이해하기)


종교는 영성과 다르게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하는 도구. 종교=계약, 영성=여행. 종교는 어떤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적 틀을 지키기 위한 계약 질서를 만든다. 반대로 영성은 그런 질서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영적 여행도 결국엔 종교 제도로 만들어지게 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

- 과학과 종교는 앙숙 관계? : (x)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종교만이 지침을 제시 가능. -> 보완 관계

- 과학과 종교는 별개로 작동? : (x) 과학은 사실만을 다루지만 종교는 윤리적 판단+사실적 주장=실용적 지침으로 작동. -> 서로 포함관계


윤리적  판단으로 보이는 가치 안에는 사실적 진술이 포함된다. 따라서 과학이 윤리적 딜레마 해결 가능. 윤리적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사실적 문제 측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에 대한 윤리적 논쟁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한편 종교는 과학연구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종교 없과학을 설명할 수 없. 과학혁명이 종교적 대립이 심했던 유럽에서 시작했다. 종교는 질서, 과학은 힘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을 협력 관계라고 볼 수 있.


근대사를 과학과 특정 종교, 인본주의 사이의 계약 과정이라고 할 수 있. 앞으로는 새로운 계약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 예상: 과학과 새로운 포스트 인본주의 간의 계약?


6. 근대의 계약


근대  이전: 인간은 신 또는 자연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 속에서 하나의 역할 수행.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힘은 제약을 받음. 즉 힘을 포기하는 대가로 의미를 얻은 것.


근대 이후: 의미를 포기하는 대신 힘을 얻음. 아무 의미 없는 우주 속에서 원하는 대로 힘을 이용. 주어진 역할에서 안주하지 않고 벗어나 주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함. 이를 막을 신은 존재하지 않음. 근대 이후의 삶은 의미가 사라져 버린 우주에서 끊임없이 힘을 추구하는 과정. 그러면서 인류는 발전하고 성장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위협에 시달림.


과거에는 성장에 대한 기대 없이 항상 일정한 파이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장을 믿지 못하여 신용이 없고 투자라는 개념을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반면 근대사회에는 성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을 종교라고 볼 수도 있다. 당면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제성장이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는 윈윈관계를 추구하며 세계 화합에 기여한다. 자본주의는  파이가 커지는 기적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믿는다. 새로운 자원으로 떠오른 지식은 원재료, 에너지와 달리 사용할수록 늘어나고 더 많은 원재료와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과학혁명 이후 무지를 인정하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성장이 계속됨과 동시에 생태계 파괴 또한 함께 일어나고 있다. 과학이 진보하면 생태계 파괴에 따른 결과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문제.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와 구조의 생성, 쇠퇴가 반복되는 긴장과 혼돈 속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콜라.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는 한 괜찮다는 것. 결과적으로 현재 자본주의에 의해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기아, 역병, 전쟁 극복 등).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힘을 준 대신 의미를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윤리, 동정 등이 아직 살아있음. 이는 '인본주의'라는 혁명적인 종교 덕분.


7. 인본주의 혁명


우주적 계획(신)을 통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인본주의. 과거에는 우주적 계획(신)이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는 인간의 경험 우주에 의미를 부여. 인류를 숭배하고 신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


의미와 권위는 항상 같이 있다. 그래서 신에 대한 의미가 큰 만큼 권위도 높았다. 하지만 이젠 인간이 의미의 최종 원천인 동시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최고의 권위가 되었다. 신의 말(성경)에 따르지 않고 우리 내면의 목소리와 감정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신부가 성경의 말에 따라 방향을 알려준다면 이젠 심리치료사가 본인의 감정에 따르라고 한다. 인본주의에 따르면 감정을 기준으로 나쁜 감정이 들면 나쁜 일이라고 본다. 반대로 본인에게 좋은 감정이 드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 일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허용해야 하는 일이다. (동성애가 그 예가 될 수 있음)


감정은 사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절차에도 의미를 제공한다. 정치권력은 신으로부터 내려와 정해지는 것이 아닌 일반 국민들의 감정에 따른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 과거엔 예술분야에서도 노래, 미술작품 등 모두 신의 영감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성령이 예술의 원천이고 예술가는 매개자일 뿐이었지만 이젠 인간의 감정이 예술 창조의 유일한 원천이 되었다. 경제학에서도 고객의 자유의지에 따라 시장이 형성되고 수요가 만들어진다. 교육분야에서는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 인본주의 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신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며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도 결국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


중세 유럽의 지식 공식=성경X논리

과학혁명의 지식 공식=경험적데이터X수학: 윤리적 판단에 대해서는 성격으로 보완

-> 인본주의 지식 공식=경험X감수성 : 경험과 감수성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이 확장. 삶이란 경험을 통해 무지에서 계몽으로 가는 점진적인 내적 변화과정. 행동보다 느낌과 경험에 더 주목.


인본주의의 세 갈래 분열

1. 정통 자유주의 : 인간은 독자적인 내면의 목소리와 경험을 통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함. 개인의 자유의지 강조.

-> 비판적 측면: 다양한 개인 간의 충돌은 어떻게 해결? 국민투표도 기본적인 유대감이 공유될 때 합의될 수 있는 결과 도출 가능.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집단 내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통해 해결 시도.

2. 사회주의: 개인의 감정과 경험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타인의 필요와 경험을 더 우선시. 개인보다는 정당과 노조 등 공동기구의 필요성을 주장.

3. 진화론적 인본주의: 개인 간의 갈등을 긍정적으로 보며 갈등을 통해 진화가 가능하다고 봄. 갈등(전쟁)은 우월한 존재들만 남게 만들기 때문에 긍정. 히틀러와 나치가 그 대표적인 예지만 이는 극단적인 경우.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근대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작가의 중립적인 입장)

정리: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문화 비교를 회피, 사회주의자들은 정답을 찾는 문제를 당에 떠넘기기,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그 문제를 신나게 다루며 혼란을 즐김.


20세기 이후의 인본주의 종교전쟁

- 20세기 초 10년: 정통 인본주의(자유주의) 시대

- 약 60년 간: 세계대전 이후까지 자유주의 부정적 , 사회주의로 물들어감.

-1970년대 후반부터: 자유주의의 재기. 냉전에서 자유주의 승리

꽤 긴 시간 자유주의가 힘을 잃었다가 힘을 찾으면서 사회주의와 파시스트들의 제도 채택(교육, 건강, 복지 제도)


현재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이라는 자유주의의 대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21세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한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기술이 설명하기 어려운 윤리적, 신념 부분에 대해서는 종교의 방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술은 종교 비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 기술적 현실을 알아야 현재 우리 삶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

성경의 글귀만을 탐독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기술적 경제적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술 종교'


21세기 진보의 기차를 탄 사람(진보하는 생명공학, 컴퓨터 알고리즘 등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신성 획득 가능하다. 성경은 아직도 권위의 원천으로 이용되지만 더 이상 창조성의 원천이 아니다. 전통 종교가 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자유주의가 최고라를 의미는 아니다. 자유주의는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고자 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포스트 인본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의미를 얻어오며 힘까지 부여받았지만 인간의 감정이 설계되고 통제되는 기술이 실현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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