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던 딸이 물었다. 라디오에서 당첨된 사람에게는 선물을 준다는 진행자의 멘트를 들은 뒤였다.
"글쎄, 모르지. 한 번도 안 보내봤으니."
"한번 보내봐. 엄마는 뽑기 운이 좋잖아."
옆에 있던 둘째가 덩달아 거들었다.
"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더니 두 아이가 눈을 맞추며 웃는다.
자연스레 우리 셋의 눈길은 한 곳으로 이어졌다.
2019년 동부 여행 중에 들린 코닝의 유리박물관에서 상품(?)으로 받은 접시였다.
사실, 정확하게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19년 당시 Mid West 중 하나인 Iowa주에 살던 우리는 그 해에 두 번의 동부 여행을 떠났다. 한 번은 남편과 아이들 봄방학 시즌에 맞춰 떠났던 D.C와 뉴욕시티 여행이었고 두 번째는 여름 방학 시작과 함께 떠났던 여행이었다. 이 유리 박물관은 두 번째 동부 여행 중 방문한 곳이었다. 미국에서의 장기여행은 늘 한 푼이라도 아끼며 한 곳이라도 더 보겠다는 남편의 집념의 산물이었기에 우리의 여행은 늘 고단했다. 이 여행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남편은 첫날부터 우리가 살던 Ames라는 작은 도시에서 미주리와 인디애나주를 거쳐 오하이오까지 11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렸다. 대한민국과는 사이즈가 다른 나라인지라 그들이 3-4시간 걸리는 옆에 주에 점심 약속을 간다는 농담 같은 진담을 듣고 했지만 그래도 매 방학 때마다 펼쳐지는 장시간 운전은 언제나 힘들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거쳐 아침 일찍 출발하여 밤늦게 도착한 첫날 숙소에서 우리 모두는 기절했던 거 같다.
미국여행의 동반자 google map
둘째 날은 남편이 지인이 살고 있는 버펄로로 향했다. 두 아이와 같이 간 조카에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남편과 나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만났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두어 시간이 걸리는데,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크기 사이즈를 보건대 그 정도 거리는 옆동네였다. 해서 연애인지 우정인지 모를 현 남편 당시 썸남이었던 분과도 두서너 번쯤 그분 없이도 두어 번쯤 갔던 곳이 나이아가라 폭포였기에 개인적으로 전혀 기대가 없었던 장소였다. 하지만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아니겠는가? 썸남과 폭포 근처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맥주를 먹었던 그 밤도 아름다웠지만 아이들과 함께 우비를 입고 배를 타며 폭포를 지켜보는 건전한 여행도 무척 즐거웠다.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채 조금은 쓸쓸해져 버린 버펄로를 떠나 사이프러스라는 도시에서 일박을 하고 집에서 떠난 지 넷째 날 보스턴 근교에 도착했다. 우리의 여행은 주로 에어비앤비였는데 맥드날드 햄버거 외에는 양식의 느끼함도 팁의 부담도 너무나 질색하던 남편 덕분에 나는 에어비앤비에서 새벽마다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보스턴 근교의 에어비앤비는 파란 눈 금발머리의 아주머니가 홀로 사는 이층 집으로 앵무새가 날아다니고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컴컴한 지하로 내려가 생전 처음 보는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게 조금 고역이었지만 곧 익숙해졌고 떠날 때는 이런 곳에 또 언제 머물러볼까 싶어 무척 아쉬워 낯가리던 주인아주머니를 아주 살짝 안아드리고 왔다.
보스턴 여행 중에 묵었던 외곽의 에어비앤비
보스턴을 떠나 이동한 곳은 미국 동부 북쪽에 있는 Maine주였다. 메인주에 간 건 미국살이 당시 미국에 있는 유명 국립공원은 다 찍어오겠단 남편의 적극적인 주장 때문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휴가를 떠났던 곳이었던 만큼 대서양을 낀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곳에 한 일주일쯤 머물러도 다 둘러보지 못할 텐데 언제나 도착과 기념사진에 의의를 두는 운전자이며 결정권자의 선택은 2박이었다. 딸아이가 너무나 사랑하는 랍스터를 한번 더 먹고 메인주와 이별하였다. 메인주에서 뉴욕주를 거쳐 인디애나폴리스까지 돌아가는 여정 중 들렸던 곳이 바로 "코닝"의 유리박물관이다.
아카디아 국립공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코닝(Corning)은 크리스털시티라고 알려진 뉴욕주의 작은 도시로, 코닝 유리박물관과 Corning incorporated라는 대기업이 이곳에 있다. 중부 시골에서 뉴욕 시골까지 굳이 차를 타고 찾아올 일은 없지만 가는 길에 있다면 안 들릴 이유도 없었기에 우리는 한 나절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 박물관은 유리에 관한 다양한 전시와 실제 유리 제작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 박물관 중 하나이다.
어렸던 아이들
이곳에 들렸을 즈음에 우리 모두는 열흘 가까이 이어진 강행군에 사실 많이 지쳐있었다. 쉬는 시간 없이 연이어진 빡빡한 스케줄과 끝없는 자동차 여행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지치게 했다. 여행이라 하면 최대한 많은 곳 도장 찍기 정도로 생각하는 남편과 여러 곳을 보다는 한 군데서 여유롭게 머무르길 원하는 로망을 가진 나의 간극은 너무 컸기에 이때쯤 나의 짜증도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마음이 이러하니 말이 곱게 나올 리 없었고, 한창때의 천방지축인 둘째 아들의 막무가내를 받아줄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린이에게 무료인 박물관이라지만 유리 전시 따위가 8세 남자아이에게 그다지 흥미로울 일이 없음에도 나는 아이가 집중하거나 조금 조용히 구경해 주기만을 바랬다. 결국 아이는 사람 없는 구석으로 데려가져 나에게 혼이 나는 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참 이상도 하지. 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그 수많은 풍경과 일들은 별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박물관 구석에서 나에게 혼나던 아이의 얼굴만은 또렷이 남아 한 번씩 마음 한편을 헤집어 놓으니...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후회를 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전시관을 지나 유리 만들기를 시연하는 스튜디오로 가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뜨거운 불로 유리를 만들어 내는 광경은 더 이상 내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온통 미안함과 후회만이 감돌았다. 미안하다고 아이를 꼭 안아줄 수도 있지만 우선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무대위에서 유리만들기를 보여주는 모습. 저 앞에 놓인 유리제품중의 하나를 선물 받았다.
그때 무대에 있던 진행자가 관객 한 명을 선정해 무대에서 직접 만든 유리제품을 선물하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천장을 슬쩍 보니 관객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가 있었고 나는 카메라가 우리 쪽을 향할 때마다 온갖 정성과 오버를 박수를 쳐대고 기뻐하는 제스처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마지막 선물을 받을 사람을 가르치는 카메라가 내쪽을 가르치며 화면에 무대 위 화면에 비쳤다. 나는 수줍어 하는 아이들 손을 잡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나가 득의양양하게 선물을 받아왔다. 시무룩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기쁨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한없이 쪼그라들던 내 마음도 조금쯤 부풀어 오른 듯 하였다.
남편의 공부 덕에 우리는 미국에 있는 2년의 시간 동안 방학마다 미국 곳곳을 여행 다닐 수 있었다. 이번의 두 번째 동부 여행에서도 우리는 많은 곳을 다니며 함께 기억을 공유했다. 하지만 그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나이아가라 폴스의 압도적인 풍광도 매력적인 보스턴 거리도, 천혜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카디아 국립공원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그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여행도 삶의 연장이다.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쩌면 너와 내가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느낌이었다. 근래 아이들과 많이 여행을 못 가 내내 아쉬웠는데 돌아보니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었다. 얼른 더 하나라도 더 아이들과의 시간을 쌓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