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식탁, 식비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작고 텅 빈 냉장고를 좋아한다. 어디서 들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굳이 큰 냉장고를 사지 않는다고 했다. 미리 반찬을 만들어 쟁여두는 한국식 냉장보관법과 다르게, 조금씩 자주 장을 봐와서 신선하게 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냉장고가 클 필요가 없다고. 어디선가 들은 이 이야기는 나의 로망이 되었다. 아,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다행히도(?) 나의 첫 냉장고는 작았다. 풀옵션 빌트인 냉장고라 딱 부모님 집 냉장고의 반쪽만 떼어놓은 사이즈다. 평일에는 대부분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집순이의 시간을 보내면서 실제로 나의 장보기 실력은 조금씩 늘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자주 장을 보니까 식비가 많이 든다는 것. 그리고 혼자 먹다 보면 항상 남아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는 점점 귀차니즘과 합쳐져서 어느 순간 1인용 레토르트 음식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 맛있는데, 양도 딱 좋잖아?)
그래서 일주일치 실험을 해보았다.
문제 : 식비가 은근히 많이 들고, 음식물쓰레기가 너무 싫다.
원인 : 한 번 장 보면 기본이 3-4만 원, 그중에 반은 버려서 아까움 / 신선한 채소, 과일이 먹고 싶은데, 혼자 먹다 보면 늘 남아서 또 버림. 아까움
해결방법 : 나에게 필요한 건 스피드!(퇴근하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저녁 메뉴, 어렵고 오래 걸리는 건 질색) 하지만 라면, 시리얼, 냉동식품 같은 패스트푸드 말고, 건강한 패스트푸드로 먹고 싶다. 그래서 내가 기획한 해결방법은 ‘일주일치 식단 짜기’
일주일치 식단 짜기 + 장보기 계획 :
1. 목표 예산을 정한다.
2. 좋아하는 식재료를 적는다.
3. 그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내가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생각한다.
4. 식재료를 사용하는 양과 보관기간을 생각하며 월화수목금 메뉴를 정한다.
5. 살 것을 정하고, 일주일치 장을 본다.
나의 목표 예산은 2만 원이었다. 95%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목표는 타이트하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구매했던 목록들을 떠올리며, 좋아하는 것들을 쭉 적어본다. 억지로 무리하게 맛없고 건강한 재료를 넣으면 항상 실패했다. 그냥 늘 먹던 대로. 그래도 조금 건강하게 먹고 싶다면 그중에 좋아하는 걸로 고른다. 예를 들면 ‘샐러드를 좀 먹어야겠어’라면 샐러드 중에 맛있게 먹었던 채소를 하나씩 도전하는 것이다. 난 초밥정식에 나오던 샐러드가 맛있었다. 양배추+양상추+흑임자 소스(?) 같은 조합이었다.
여기서 내 요리실력이 탄로 난다. 요리라기 보단 조리에 가깝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만들었지만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여야 한다. 퇴근하고 와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패스트푸드! 레시피여야 한다.
이건 내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과정이었다. 미리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귀찮은 게 많은 기분파로서 ‘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싶은 일이었다. 아이패드로 끄적끄적하는 게 재밌어서 하다 보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장을 볼 때, 실제로 먹는 양의 2배 이상을 샀구나!
그리고 식재료의 양과 보관기간을 치밀하게 (?) 계산해야 한다. 이건 뭐라도 직접 해 먹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양상추 같은 채소는 2-3일 이상 신선한 상태로 보관하기 어렵다. 한 번 먹고 말 메뉴라면 그 나머지는 무조건 음식물 쓰레기통 행이다. 그래서 같은 재료로 다른 메뉴도 만들 수 있는 메뉴를 떠올려 봐야 한다. 냉장고에 계속 남아 음식물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원래대로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장바구니에 자주 들어가는 것들)’의 목록에 적힌 것들을 습관처럼 거의 다 샀을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치 식단을 계획해보니 일주일 동안 먹을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냉장고에 이미 있던 것(달걀, 치즈, 식빵)은 빼고 나니, 사야 할 것이 정해졌다. 그리고 ‘레토르트 대신 김치찌개 만들어먹기’ 작은 미션을 추가했다. 샐러드 소스는 들깨소스(초밥집에서 맛있게 먹었던)로 만들면 자주 먹을 것 같아 들깨가루를 사기로 했다.
월요일, 퇴근 후 장을 봐왔다.
습관처럼 사던 것들을 빼고 딱 살 것만 사 왔다. 물론 예산은 초과했다. (나도 2만 원은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맘대로 물가를 예상해서 계획했지만, 다 조금씩 비쌌다. 정해진 금액으로 계획한 목록을 쇼핑하다 보니 이상하게 엄마가 쇼핑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매일 비슷비슷한 메뉴로 차려진 저녁메뉴들이...
일주일치 장보기에 이어
일주일치 만들어먹기 + 식재료 보관, 활용 꿀팁! 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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