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유하 Mar 10. 2019

인종만큼 강한 첫인상이 또 있을까

텍사스에서 미용사로 산다는 것은   22화


시간당 8.5불 받는다고?


살롱마다 카운터를 지키는 리셉셔니스트가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일하는 그레이트 클립스에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리셉셔니스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한 두 달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어쩌면 그들의 의지력이 부족해서 못 견뎌냈기보다는, 임금도 낮고(시간당 8~9불 사이) 근로조건이 안 좋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지난겨울을 함께 보낸 버타는 리셉셔니스트 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내 눈엔 그래 보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집에서 강아지, 고양이, 새하고만 지내다가 밖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니까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더구나 컴퓨터로 체크인을 하고 헤어제품 판매하는 일을 아주 재밌어했다. 그녀는 50대 중반인데 컴퓨터로 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가 일하던 첫날부터 지켜봤던 나로선 아무리 영어권이라도 손님의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 타이핑이 누구나에게 다 쉬운 일은 아닌 듯싶었다.

그녀에겐 세 가지 소중한 것이 있었는데, 하나는 텔레비전 리모컨, 또 하나는 코카콜라, 그리고 담배라고 했다. 이것만 있으면 자기는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자기 몸엔 비싼 것 하나 안 걸치는 그녀였지만 자기가 키우는 애완동물에겐 늘 유기농 사료만 먹일 정도로 끔찍이도 아꼈다. 자신의 점심은 딸랑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다시피 해도 애완동물에겐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그날 신선한 사료를 먹여야 하고, 미국 동물학회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구독하는 그녀였다. 나에게 그녀는 좋은 말동무였던 것이 스페인어도 하고 영어도 해서, 간혹 가다 막히는 단어가 있다 싶으면 영어든지 스페인어든지 뜻을 물어보면 그녀의 입에선 막힘없이 줄줄 흘러나왔다(그래도 영어만 쓰는 스타일리스트 앞에선 될 수 있는 대로 스페인어 사용을 자제할 정도로 주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아니 눈치를 봤단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녀는 천성적인 이야기꾼이었다. 사실 이런 성향이야말로 리셉셔니스트로선 최적의 조건일 것이다. 살롱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자연스럽게 말 한마디 걸어오면 누구라도 친화적인 태도가 되기 마련이니까. 그랬던 그녀가 돌연 살롱을 그만두고 말았다. 아주 많이 바쁜 아침이었는데, 기다리던 몇몇 손님이 나가버리니까 버타 입장에선 마음이 조급했던지, 손님과 늘어지게 수다를 떨던 한 스타일리스트에게 가서 다음 손님이 기다린 지 오래됐다는 둥 잔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이 말에 그 스타일리스트는 발끈해서 '너는 너의 리셉셔니스트 일만 하면 되지, 네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냐'라고 한판 붙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둘은 나이도 비슷해서 말이 아주 잘 통하는 사이였는데...


그렇게 버타가 떠나버렸다.


그녀가 떠나면서 나에게, 그리고 다른 스타일리스트에게 신신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버타에게 잔소리한 그 스타일리스트를 절대 믿지 말라고, 그녀를 조심하라고. 그런데 나는 버타가 말한 그 스타일리스트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인간관계란 것이 어디 예측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그녀가 살롱을 떠난 뒤 6개월이 지나도록 리셉셔니스트 후임자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전화받는 일, 체크인하는 일, 때로는 헤어제품까지 판매하면서 이 모든 일을 머리 깎으면서 함께 하고 있다. 안 바쁘면 할만한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땐 손님 머리 깎다가 중단하고 이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중에 전화받는 게 골칫거리였다. 간혹 간단히 안 끝내지는 전화통화가 있었다. 살롱으로 걸려오는 전화 중엔 스타일리스트의 스케줄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번 헤어컷 한 스타일리스트가 누구였는지 물어오면 일단은 한숨부터 나왔다. 


<Photo by Chris Knight on Unsplash>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Photo by Antonio Reynoso on Unsplash>


지난번에 내 머리 깎아준 스타일리스트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알 수 있을까요?


이럴 땐 손님의 전화번호든 이름으로 찾아낼 수 있는데, 때로는 개인정보를 거부하는 손님일 때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손님은 그때 자기 머리를 깎았던 스타일리스트의 외모를 어렵사리 기억해 내려하는데, 머리 색깔이며 키가 큰지 작은지 뭐 이런 점잖은 묘사로 물어오곤 했다. 


이럴 땐 한마디로 백인인지, 흑인인지, 아시안인지 말해버리면 쉬울 텐데...


그들도 그것만큼은 충분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대놓고 드러내기를 아주 꺼렸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서로들 이 부분만큼은, 밝히기를 꺼렸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미국에서 그런 발언은 자칫 인종주의자로 오해의 소지를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쪽의 문제 자체를 안 만들려고 하는 게 그들의 언어습관이고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손님은 머리 색깔로 지난번 스타일리스트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손님 중엔 가까이 다가와 (남들한테 안 들리게) '아프로-아메리칸 미용사였는데 내가 이름은 몰라' 이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물론 어디나 다 그렇듯이, 대놓고 말하는 손님도 더러 있긴 하다. 그래서 많은 손님은 나를 '아시안 레이디'라고 기억했고, 조금 더 나를 잘 아는 단골들은 내 이름으로 나를 기억했다. 그들에겐 외국인 이름이 낯설고 잘 안 외워지다 보니, 좀 더 현지화되어 다가가기 위해, 외국에서 온 이들은 영어 이름 하나 만드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의 세계이고 고객을 상대로 할 때는 제니퍼 리, 로라 정, 헬렌 박이어야, 손님이 잘 기억하니까.


뒷모습으로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듯이... <Photo by Tobias Zils on Unsplash>


언젠가 우리 아들이 여자 친구가 생긴 친구하고 전화통화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보는 건 오로지

여자 친구가 예쁘냐는 거였다. 한국 사람들끼리는 얘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잘 안 떠오르면 '왜 있잖아 키 크고 늘씬하고, 아니면 오동통한 귀여운 스타일'처럼 외모의 특징적인 부분에 대해 들춰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는 곳은 아무리 외모에 관해 묘사를 한다고 해도, 


과연 인종에 대적할만한 적당한 미사여구가 있을까 싶다. 


먼저 그 사람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등등 밝혀놓은 다음에 나이, 외모를 덧붙이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아주 뚜렷해진다. 현실이 이런데도, 공식적인 서류 작성에선 이렇게 물어보고 있다. "당신은 라티노입니까, 아닙니까?" 그러면서 민족(ethnity)에 대한 답변은 선택사항이니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라고, 서류에선, 어쩌면 법적인 테두리에선 그렇게 점잖은 척 흉내를 내며 발뺌을 하고 있었다. 직장을 구할 때 법적으로 이력서 어디에도 인종이니, 나이를 물어보는 항목을 만들지 못하게 했더라도 (심지어는 증명사진 하나 안 붙이더라도) 인터뷰를 통해 그 모든 것은 밝혀지게 돼 있었다.


<Photo by Drew Coffman on Unsplash>


이름은 기억 안 나도, 피부색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렇게 첫인상은 인종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무리 흐릿해도, 피부색이 어땠는지는 기억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살롱의 오너 입장에선 스타일리스트를 채용할 때 어떤 인종인지가 매우 중요할 때가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살롱을 찾는 고객들의 인종에 비례해 스타일리스트의 인종도 그에 따라 달라졌다. 말하자면 히스패닉 손님이 많은 곳이면 당연히 히스패닉 스타일리스트(스페인어가 유창한)가 많은 편이고, 흑인이 많이 찾는 곳이면 그에 따라 달라졌다. 재밌는 것이 그레이트 클립스에 내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백인 스타일리스트가 많았고, 나보다 먼저 와있던 베트남 남자 스타일리스트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매니저를 위시해 모두가 일주일 사이에 다 나가버렸다. 그러고 나서 오너는 흑인 매니저를 채용했고, 그 뒤로 흑인 스타일리스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둘도 없는 자매처럼 친해졌고, 확실히 같은 인종끼리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서로들 단합이 워낙에 잘돼서 그들 사이에서 일하는 나로선 무슨 섬나라에 고립된 느낌까지 들었다. 솔직히 나이가 쉰이 다 되어 이런저런 직장생활도 해봤고, 애들도 키워봤고, 누가 잘난 척을 해도 들어주고 봐줄 만한 여유가 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가 시시콜콜 그런 모든 거에 감정소비를 했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러던 어느 날 매니저가 하는 말이 우리도 스타일리스트가 더 필요한데 이제 흑인은 더 안된다고 그녀 스스로가 말할 정도였다. 그녀도 잘 알았던 것이 흑인들은 헤어컷을 하다가도 얼마나 재밌는 얘기며 우스갯소리를 잘하는지 그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가 실로 대단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백인 스타일리스트가 스프링이었다. 이름이 하도 예뻐서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스프링은 이쁘장하고 애교도 많았고, 자기가 학자금 빚이 많아서 돈을 하루빨리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각오가 대단했다. 그런데 살롱이란 곳이 바쁠 때야 엄청나지만 안 그럴 때도 많아서,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스프링은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와서 브레이크 룸에서 기다리는데 그사이에 어시스턴트 매니저였던 키나가, 말하자면 우리식의 기합을 잡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었고 생전 다른 스타일리스트에게 아부 따위는 안 하던 스프링이 키나가 머리 깎은 거 보고 멋지다고 탄성을 자아냈다. 아이고 어디나 사회생활하기 참 힘들다 싶다. 그런 일이 있고 그다음 날로 스프링은 살롱을 그만뒀다. 무슨 동물의 세계에서 기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가 싶다. 그렇게 흑인이 많아서 균형을 맞춘다고 뽑아놓은 백인 스타일리스트는 기지개도 제대로 못한 채 살롱을 떠나게 됐고, 그녀가 떠난 뒤로 온갖 근거 없는 소문이 만들어졌다. 화장실에 오래 있었던 게 마약 때문이고, 코를 훌쩍거리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세상살이는 공평하지 않았다.


그걸 또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은 스프링 덕분이었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고선 시간당 페이가 얼만지 얘기하는 일이 없는데, 어느 날 아침 한가한 시간 스프링은 나에게 자기는 시간당 $10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너는 얼마 받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살롱 들어올 때 $9.60을 받고 들어와서 곧 있으면 올려주겠다는 말을 믿고서 나 역시 까먹고 있었다, 아니 귀찮아서 시간당 페이 올려달라는 서류 절차를 하기 싫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2015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순간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무엇보다 실력도 한참이나 나보다 못해 보이는데 더 많이 받는다고 하니, 이런 불공평한 게 어디 있을까 싶었다. 사는 게 이렇게 유치하다. 모를 땐 가만히 있어놓고서 정작 알고 나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러는 거 보면.

그렇게 며칠 후 오너가 살롱을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음을 얘기했고 나로선 불쾌하다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얘기했다. 물론 그 후로 여러 평가절차를 밟으며 시간당 페이는 스프링보다 더 받게 됐지만, 같은 경력의 스타일리스트가 받는 것에 비해 스프링은 압도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불평등함을, 그것이 인종에서 온 것임을 확인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씁쓸했다.

그 일이 있고서 거의 2년이 지난 어느 날, 아주 친하게 된 키나가 나에게 하는 말이 최근 5년간 나 빼고 누구도 시간당 페이를 올려주지 않아, 다들 살롱을 떠나게 된 거라고... 참 그 몇 센트 올려주는 게 뭐라고 살롱에 그 많은 단골이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떠나게 했는지...

작가의 이전글 수염은 면도당하던 시절에서 벗어나고 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