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eon May 28. 2021

과학자와 과학기술학

홍성욱 교수에게 듣다

과학기술인 경력개발지원 플랫폼 "K-클럽" 커리어Up 기자단 활동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기사들은 https://bit.ly/3wrjxg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연구실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논문을 읽고, 미팅을 하며 실험 과정을 돌아보고 결과를 성찰한다. 그 과정을 통해 각자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쌓아가고, 앞으로 어떤 연구와 실험을 해야 할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과학 연구는 늘 객관적이고, 절대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연구란 매우 복합적인 활동이다. 연구실의 운영을 위해서는 그 연구가 왜 필요한지를 사람들에게 이해시켜 연구비를 따내야 하고,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학계의 다른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중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분야의 역사와 발전 과정, 그리고 분야의 권위자들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또한 학계 내에서 파벌이 형성되기도 하고, 같은 현상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대립이 발생하기도 하며, 비슷한 갈등이 한 연구실 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요소가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때로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과학 활동을 바라본다면 새로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울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와 과학기술학을 연구하는 홍성욱 교수를 인터뷰했다. 홍성욱 교수는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실험실의 진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과학기술과 사회』 등의 저서와 EBS 『모던 테크』 등의 강연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과학기술학의 관점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Q.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과학기술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입니다. 과학기술학을 넓게 정의하자면 과학기술의 역사, 철학, 사회학, 정책, 과학커뮤니케이션 등이 전부 포함이 되고, 좁게 정의하자면 STS -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과학기술사를 연구했는데, 2003년에 한국에 귀국한 후로는 STS 쪽으로 관심을 넓혀 갔습니다. 당시 STS는 해외에서는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한국에 와서는 서울대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STS 전공을 새로 개설했고, 그 후로는 과학기술사보다도 STS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관심을 두고 진행하는 연구로는 2018년에 논문을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인공지능과 사회,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논쟁과 같은 주제들이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물리학부를 나오셨는데, 이후 진로를 과학기술학으로 바꾸셨습니다. 비교적 생소하지만 과학기술학도 이공계 학생들의 진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과학기술학 공부를 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학생 때는 수학을 좋아했고, 과학자가 되려고 물리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역사 같은 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대학을 들어갔을 때 당시 80년대 한국의 사회나 정치적인 상황이 크게 변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대학에서도 학생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을 바꾸기에는 이미 이공계 수업을 많이 들었고 인문계와 너무 큰 간극이 있어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서 들었던 김영식 교수님의 과학사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과학이란 것도 사회 속에서 발전하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구나'. 이걸 물리학의 개념과 공식들을 배울 때는 몰랐던 거죠. 그러면서 내가 과학보다는 사회와 세상에 더 관심이 가는데, 전공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 과학사를 공부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막 개설되었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원에 입학을 했는데, 그 때 인턴을 하고 있던 반도체 연구실의 교수님이 과학사를 공부해서 나중에 뭘 하려고 그러느냐면서 극구 만류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후회를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생각하고, 집에도 비밀로 하고 과학사 쪽으로 진학을 했어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나쁜 선택이란 건 없다, 선택 뒤에 나쁜 행동이 있을 뿐이다'. 선택을 하고 나서 그것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정말 막막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어떻게 운이 좋아서 지금은 좋은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문계 뿐만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이 우리 협동과정에 매년 여러 명씩 진학을 하고 있고, 계속 운영이 잘 되어 와서 내년부터는 협동과정이 '과학학과'로 바뀌어서 서울대 대학원 학과로 새로 개설됩니다.


Q. 최근의 교수님의 강연이나 저서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과학과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면적인 시각으로 과학 활동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데요, 교양의 수준을 넘어서 실제로 과학 활동을 하는 연구자들이 과학철학이나 STS에 대해서 배우고, 과학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역사와 발전 과정,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인식론적, 철학적 쟁점들이 있습니다. 또 꼭 모든 분야가 그렇지는 않지만 사회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과학기술들도 있지요. 그런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수와 성과를 분석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보는 등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연구자들에게 과학기술은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일텐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서 지금에 이르렀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것은 한 명의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일이 바빠도 뉴스와 신문을 봅니다. 그건 우리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데,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연구가 바쁘더라도 조금씩만 생각할 시간을 내서 세상 속의 과학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연구를 더 큰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이 본인의 연구에도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의 연구 중 <실험실과 창의성> (과학기술학연구, 2010) 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정말 현실적인 실험실 이야기가 담겨있어 대학원생들이 공감하며, 또 배우면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은데요, 논문에서는 성공적인 연구실의 주제와 가설 설정, 분업과 협력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과정들을 총괄하는 연구책임자의 역량과 연구실의 제도와 문화가 중요함이 강조되고 있는데, 교수님의 연구에서 개개의 대학원생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학생이 한 명의 연구책임자가 되기까지 아마 두세 곳 정도의 연구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 어디에서도 실험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팀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훌륭한 연구자였더라도, 엉망인 팀 리더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실험실과 창의성> 논문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그 이후 여러 연구실에 설문지를 돌려서 각 연구실의 현황과 문제에 대해 조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답변을 보면 연구실의 약점들이 드러나는데, 교수들의 답변을 보면 많은 경우 자기 연구실의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다들 자기가 연구실을 잘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실험실이 잘 운영되면, 어쨌든 거기서 몇 년을 지내는 구성원들이 좀 더 행복하고 즐겁게 연구를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도 많아질 겁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논문을 내고, 칼럼도 쓰고, 설문 키트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는데, 여튼 학생 때부터 연구실 문화와 팀워크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많은 교수들이 자신의 지도교수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자기가 본 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어떻게 해야 내가 좋은 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연구실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거죠. 사실 경영학 쪽에서는 리더십에 대한 좋은 연구와 글들이 무궁무진한데, 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습니다.


한편, 연구실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뢰'입니다. 연구실 구성원들 사이에, 또 교수와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가 중요한데, 신뢰는 쌓기는 힘들고 무너지는건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신뢰가 쌓이면 사소한 실수가 용서되고, 서로를 믿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의 효율과 창의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쌓고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은 학생일 때부터 해야 하고, 또 자신이 나중에 리더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전달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과학학 분야의 연구자들과 실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간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요즘은 과학기술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이 많이 늘었습니다. 관련된 책과 칼럼들도 더 많이 읽히고 있고, 과학자들과의 교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과학기술학 분야가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과학기술학에 반감을 보이는 연구자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이 늘 과학에 비판적이고, 반과학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과학기술학이 과학을 분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과학 자체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생기는 오해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과학기술학이 정말 의미를 가지려면 거기서 나오는 좋은 논의들을 계속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대중서를 쓰고 강연을 하는 등의 다양한 대중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가 쓴 책 중에 『실험실의 진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공계생들은 실험실에서 과학을 하는데, 사람들이 머릿속에 주로 그리는 과학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학자들의 이론과학입니다. 이 책에서는 실험에 초점을 맞춰서 실험과 실험실에 녹아 있는 역사와 철학,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러한 책을 읽으면서 실험에 대해서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실험실의 진화』, 김영사

홍성욱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과학사나 과학철학을 아는 것이 연구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마 이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편협한 사람,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 맹목적인 사람들도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과학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자체로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인 것이다.


기자는 과학기술학적 관점 -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자에게 일종의 메타인지 능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누구의 어깨 위에 서 있는지 아는 것, 자신이 어떤 도구들을 가졌는지 아는 것,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패러다임에 맞춰지는지 아는 것, 내딛는 발걸음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 이런 것들을 몰라도 훌륭한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도와주는 능력들은 우리가 과학자로서의 삶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K-클럽(https://k-club.kird.re.kr)에서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인 경력개발 스토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커리어 고민이 있다면, K-클럽에 방문해보세요!



작가의 이전글 대학원에서 '함께' 행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