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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eon Jun 09. 2020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작가

도주가 아닌 도약을 위해

    일론 머스크가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계획을 이야기하고,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을 부르짖는 동시에, 지구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부족해 사람이 죽고, 신의 이름을 내건 명예살인과 대량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카페에 앉아 세포 속 작은 분자들에 형광 분자를 붙여 그것들을 찾아내고 추적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전혀 다른 두 삶이 드러나는 이 유명한 사진은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그저 지구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 그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는 것일 때만 정당화된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근본적 가치는, 인간 뿐이라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먼저다’ 같은 말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슬로건이다). 기술 발전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필연’이나 ‘불가피’와 같은 말들을 듣게 된다. 나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보통 이런 편리한 말들은 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허나 필연성은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말로 기술은 끊임없이 인간을 소외시키며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쩌면 앞으로의 전진과 남겨지는 사람들을 뒤돌아보는 일 중 하나를 고를 때 우리는 계속하여 관성 때문에 앞으로만 가면서 그것을 스스로 정당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앞으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어쩔 수 없다며 피해가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정말 소외되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권조차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내가 읽은 SF 소설 중 가장 따뜻한 작품이다.


    <유년기의 끝>이 거대한 우주적 정신의 서사를, <쿼런틴>이 섬세하고 치밀한 과학적 상상력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기술과 괴리되어 우스꽝스러워진 인간 정신을 그려냈지만, 이렇게 기술과 개인의 삶 사이를 비집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소설은 흔치 않았다. 테드 창의 단편 중 그런 작품들을 꽤 읽었지만, 그의 시선은 비교적 건조하고 관조적인 반면 김초엽의 시선은 더욱 따뜻하고 내밀하다. 미래 우주시대의 인본주의자라면 21세기 초반에 쓰인 그녀의 책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딘가로 나아갈 때, 우리가 우리 스스로나 우주의 다른 아름다움을 파괴하게 되거나, ‘빛의 속도로’ 따라오지 못해 남겨진 사람들이 외롭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미래를 향한 도약이 아닌 도주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의 서사를 무시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개인도 온전하기 힘들다. 정의와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조차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만약 인간 문명에 특이점이나 그 비슷한 것이 온다면, 그 순간 인류의 선택 하나하나가 인류 전체, 그리고 각 개인의 삶에 엄청난,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이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바란다. 


    감상문이 너무 ‘인간’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 역시 잃지 않았다. 어쨌든 SF라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제 김초엽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었다. 각각의 단편들에서, 인물들은 SF의 스테레오타입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SF에서 개개의 인물들은 작가가 그려낸 미래의 시대상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김초엽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시대를 이용하거나 그 위에 올라타거나 저항한다. 마치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 적어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 느끼고 믿듯이. 과학도 기술도 모두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인간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상상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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