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끼 Jan 17. 2023

집순이의 애틀랜타 3박 4일 (3/3)

그 여행을 기억하는 법

어떻게 여행을 남기고, 기억할 수 있을까?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모든 여행은 나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선물한다. 모든 여행이 좋을 순 없지만, 모든 여행은 특별하다. 이번 애틀랜타 여행도 그러하다. 여행을 더 특별하게, 그리고 오래 기억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바로 그 도시의 음식을 즐기기, 여행의 망한 부분을 즐기기, 그리고 그것들을 어딘가에 남기기.




음식으로 도시를 맛보기


The Optimist

두 번째 날 저녁, 우리는 한 해산물 음식점에 갔다. 이곳에서 인생 크랩스프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보스턴에서 먹은 클램차우더는 순식간에 잊히는 그 깊고 고소한 풍미. 이곳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왜인지 멋없는 애틀랜타에 조금 시무룩해있었는데,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곳이 애틀랜타의 성수동?"

높은 층고와 철제 인테리어가 잘 어우러진다.
풍요로운 오이스터 플래터
문제의 크랩스프

우리를 담당한 서버는 매우 친절하셨다. 수프를 하나 시켰는데, 센스 있게 2개의 작은 접시에 나눠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한 입 떠먹는데,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크랩의 진한 고소함이 크림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데, 끝은 알 수 없는 향신료로 입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같이 나온 빵튀김도 무척 잘 어울렸다. 뉴욕이 첼시마켓에서도, 보스턴의 최고맛집에서도 못 느낀 엄청난 풍미의 크랩 수프였다.











Lazy Betty

세 번째 날 저녁은, 맘먹고 예약한 애틀랜타의 파인 다이닝 음식점 Lazy Betty를 갔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애틀랜타에서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굉장히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서 한참을 헤맸다. 입구를 겨우 찾아 들어섰다. 내부 사진을 안 찍어서 없는데, 그 이유는 인테리어가 약간 실망스러워서다. 컨테이너 박스에 조잡한 장식품을 몇 개 붙여놨다. '미슐랭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도시 최고 파인다이닝이라고 왔는데, 내부가 별로네.. 음식은 괜찮을까?' 

애피타이저

약간의 걱정을 했지만, 이 걱정은 애피타이저가 나오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동서양의 맛을 조화롭게 배치한 플레이트였다. 알고 보니 동양계 셰프와 서양계 셰프가 함께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다. 마치 태국의 핑거푸드와 프랑스의 핑거푸드를 한 번에 즐기는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코스들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음식이 재밌었다. 우니가 올라간 일본식 계란찜인 차와무시가 나오더니, 버터의 풍미를 지닌 고소한 야채구이가 나왔다. 대신에 메인인 생선과 고기에서는 굉장히 클래식한 맛을 보여줬다. 전반적으로 맛이 깔끔하고 양이 딱 알맞았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하고 만족하고 있을 무렵, 레이지 베티의 진짜가 등장했다. 바로 디저트. 

입에서 눈에서 아른거리는 디저트

어떻게 이렇게 맛있고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디저트가 있을까? 단 음식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항상 디저트가 너무 달거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레이지 베티의 디저트는 가볍지만 상큼한 단맛과 부드러운 바나나와 초콜릿무스의 식감, 그리고 헤이즐넛과 버터 크럼블의 포인트를 선사했다. 전반적으로 바나나와 초콜릿 맛을 이용했는데, 각각의 맛과 식감을 이용한 최고의 맛궁합이었다.


한입 먹자마자, "이게 애틀랜타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음)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이 음식점에서 이 낯선 도시에 온 이후 가장 세련되고 근사한 환영을 받은 듯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 

예를 들어, 택시 안에서 해피뉴이어라던가 


두 번째로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은, 원하지 않았던, 가장 못난, 바보 같은 순간들을 기억하는 즐기는 것이다. 사실 여행을 가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여행이 별로일 수도 있고, 피곤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원래 계획은 1월 1일 전에 다시 뉴저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가항공사인 Spirit은 그 계획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공항에 가기 몇 시간 전, 애틀랜타에서 뉴저지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딜레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지연에 놀라고 당황했지만, 이럴 때 즐기는 사람이 일류다. 우선, 보딩시간이 늘어진 덕분에 공항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T.G.I에 가서 샐러드를 먹었다. 어린 시절에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즐거운 추억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비행기를 탔는데 타고서도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남자 친구와 수다를 떨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겨우겨우 뉴욕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니 이미 밤 11시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2022년 12월 31일, 밤 11시 22분에 짐을 기다리는 나

이쯤 되니 모든 것이 시트콤 같고 웃겼다. 그렇게 우리는 택시에서 해피 뉴이어를 외쳤다. 도시의 우버기사들은 조용하고 리액션도 없다. 우리가 "해피 뉴이어~"라고 하니 "땡큐"라는 단출한 대답만 돌아왔다. 계획을 미리 하려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웃기는 여행의 마무리였다. 생각해 보니 이런 해프닝과 어이없는 순간들이 여행을 사랑스럽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만드는 것 같다.




기록된 여행은 영원히 남는다.

 

마지막은 여행을 다녀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다시 한번 여행을 각자의 방식으로 되짚고, 사진을 보고, 생각한다.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 즐긴 것, 감사했던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면, 이 여행은 내 안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다.


20대가 되고 처음으로 간 여행은 태국이었다. 사실 사진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래서 그 기억들이 그냥 순간순간 남겨져있다. 이렇게 추억이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서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에 여행후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글로, 가끔은 만화로도 올렸다. 특히 그림으로 그 여행을 다시 기억하니, 잊힐 수 있었던 스토리텔링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따금 내가 쓴 글이나 여행만화를 보면 그때의 감정과 공간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다시 한번 여행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다시 켰다. 





앞으로도 수많은 여행을 갈 것이고,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추억들은 간직하게 될까?

기대되는 23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순이의 애틀랜타 3박 4일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