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여름은 도둑질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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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이 여름은 비축이 필요한 재난이었을까?"
숲을 거니는 대신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걷는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생태계를 관찰하듯이. 주변 공원 앞에서 관할 지역 조끼를 입고 언 냉수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일렬종대로 세워진 물병을 매만지는 손길. 자율방재단은 자연재난실 소속이다. 그 얘기는 이 더위가 누군가에게는 재난이기도 하다는 사실.
오늘 가게 cctv가 고장이 나, 가게 상황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와중 아르바이트생에게 사진 한 장과 전화가 걸려왔다. 들어올 때부터 싸한 느낌의 선글라스를 쓰고 밥을 먹던 아줌마가 접시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식사값을 환불해 주겠다는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고 했다. 자리를 치우러 가보니, 가득 채워뒀던 냅킨이 한 뭉텅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녀에게 이 여름은 비축이 필요한 재난이었을까?
종종 들었다. 너는 아무나 이해하려들어. 다정도 죄야.
나는 그 말을 듣는 게 죄스러웠다. 나를 비상계단에 가둔 사람들은 그 가파름 속에 나를 세워두고 얼마나 많은 절벽 속을 걷고 있을까. 계단 모서리에 무릎을 찍히면 피가 난다. 그러나 날카로워지기 위해 몸의 전부를 내질러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기상악화 속에서 헤드라잇이 꺼진 차를 몰아 산속을 헤매는 운전자들. 가엽다. 햇볕에 놓아두면 금세 녹아버리는 언 생수를 건네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다행히도, 이제 물을 대야 가득 받아놓고 초 하나에 밤을 지새우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겁게 내린 정적 속에서도 발을 까딱거리며 리듬을 갖추게 되었다. 한 뭉텅이 훔쳐온 냅킨이 낱장씩 그의 하루를 받쳐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자영업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다시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가는 방식이란 저마다의 생태계에 따른 것이다. 내가 자초한 일은 내가 책임지면 된다. 그 명료한 논리만이 자전을 이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