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갑시다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Rome

by Yule

교황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세상의 평화를 간구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그렇게 스스로 부활의 빛이 되셨나 보다. 사실 긴 장례미사를 함께 하면서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매번 어려운 고비마다 잘 이겨내주셨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시간을 조금만 더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었다. 기력이 쇠하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보면서도 매번 그렇게 이기적인 기도를 해왔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힘겨운 시간 속에서 마지막 축일 임무를 마치고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누웠다. 이제와 그 어깨 위를 짓눌렀을 수많은 짐들이 얼마나 무겁고 고됬을지 새삼 마음이 무너진다.


가톨릭에서는 사제를 Papa라고 부른다. 주로 영적 아버지로 여겨지기에 친근하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게 참 좋았다. 소박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잃지 않았고, 약자에겐 한없이 다정하지만 세상에 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단호했으며, 자신과 교회가 저지른 실수 앞에는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배경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 물론 축구를 사랑한다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여름 로마 여행 중엔 교황님을 먼발치에서나마 뵙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바티칸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곳이라 사실상 불가능할 듯했고,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은 곳이 교황님이 특별히 아끼신다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었다. 숙소가 있었던 테르미니 역에서 가깝기도 했고 그저 열혈팬의 마음이랄까. 무엇보다 교황님이 매번 보호와 감사를 느끼실 만큼 이 성전에는 무슨 특별한 영성이 있는 걸까 궁금했다. 신기한 건 로마에 머물면서 별처럼 많은 성당을 찾아다녔지만 나에게도 이곳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4대 교황 대성전 중 하나로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최초의 성당이다. 바실리카 양식에 기초해 수 세기에 걸쳐 확장 및 개조가 이뤄지며 다양한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4세기 어느 여름밤에 성모님이 교황 리베리오와 한 부부 꿈에 나타나서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어라" 했는데 정말 한여름에 로마 언덕 위에 정말로 눈이 내려서 그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8월 5일이면, 성당 안에 하얀 꽃잎을 뿌리면서 이 전설을 기념하는 특별 미사를 드린다.


아침의 성전으로 향하는 길은 어스름하고 한적해서 어쩐지 조금 더 으스스했다. 실제 성당이 있는 쪽은 치안이 좋지 않은데 과거부터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여행자로서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니 이마저도 교황님이 이 성당을 특별히 아끼셨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성전은 생각보다 고요하고 성가가 울려 퍼져 더욱 신비로웠다. 성스러운 문 (Porta Santa)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5세기 바실리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전 양 옆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담은 작품들 그리고 작은 경당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중앙 제단 아래 지하 그리고 파울리나 경당에서는 미사가 한참 집전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성전은 비오 9세 교황님께도 각별했는데 성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신자들과 같은 자리에서 기도하는 동상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가져온 보물 구유의 나무조각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특히 오래 머무르셨다고 하는 파울리나 경당. 이제 우리는 교황님을 바로 여기 파울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서 언제라도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던 어머니의 품에서 이젠 아픔 없이 평안하시려나.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Franciscus'라는 이름만을 새길 것을 요청한다

사실 벌써 그리워진다. 언제라도 주일 정오엔 바티칸의 창문에선 휘장이 내리고 그 아름다운 미소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만 같다. 교황님을 다시 마주 할 순 없지만 우리는 그가 남긴 유산을 기억해야 한다. 자비로이 사랑할 것. 아프고 상처 입은 이들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용서하며 사랑할 것. 가장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고 보호하며,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하느님이 주신 집으로 여기고 소중히 지켜내는 일과 같은 일 말이다. 우리가 그가 걷던 길을 따라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결코 그를 잃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사랑을 품고, 세상에 작은 하늘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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