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에 대한 두려움

by Yule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모순 속에서 결단해야 하는 궁극적인 도약의 순간 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혹시나병'이 도지는 순간이다. 평소에 나 자신을 이렇게 사랑했었나 싶을 정도로, 증상 발현 즉시 신체와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지키려는 면역반응이 발동된다. 이 주관적 진리가 아닐 수도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객관적인 자아를 꺼내고 입고, 몰입 대신 관심사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혹여나 바랄 수 없는 기대를 가지게 될까 봐.


언제부터인가 기대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다. 아마도 기대한 만큼 실망이 따라온다는 것을 세월에게 배워서 일 것이다. 물론, 희망 없이 회색 구름 같은 허무주의에 속에 살아온 것만은 아니다. 다만 기대(Expectation)보단 막연한 바람(Hope) 정도를 품고 살아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루어지면 감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깊이. 나의 '욕심'이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때론, 서로를 지켜주는 그 안전거리가 평생 도착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인간과 신의 광활한 문답처럼. 결국 진정한 깊이에 도달하려면, 서로의 거리를 허물고 다가서야 함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왜 이토록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외줄 위를 걷는 것처럼 어려운 걸까. 통제할 수 없는 변수, 불안과 모순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웃게 하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모든걸 가능하게 하는 확신은 타인이 아닌 내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얼마만큼의 마음의 크기를 보여주었기에 그만큼에 비례한 확신을 갖는것이 아니라, 내가 의미를 두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그 존재를 향한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확신 말이다. 그 확신은 외부의 조건이 바뀌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만이 줄 수 있는 단단한 약속일 것이다. 혹여 나의 선택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 걸음 내디뎠던 그 용기의 기억은 나를 한층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테니까.


겁내지마. 세상은 너를 놓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