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by 호디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실패 이후 다시 쓰기를 반복해서 쓴 책의 마무리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 책이 그의 작품들 중에서 결정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상당히 독특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구성과 서술 방식이 익숙치 않음은 분명하다. 가령 소설의 서문에 해당하는 「경고」는 아홉 쪽에 달하는 장章 전체가 마침표 없이 한 문장으로 이어지고, 본문 역시 관점이나 서술자가 바뀌는 지점에서만 마침표가 등장한다. 그래서 한 문장의 길이가 한두쪽을 넘기는 건 예사인데, 이는 욘 포세의 <아침 그릭고 저녁>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하나의 장章 안에서도 서술의 주체가 무작위로 바뀌고 주어가 3인칭 대명사로 쓰이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읽어야 한다. 이와같은 방식은 자우메 카브레의 <나는 고백한다>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흔치 않은 구성이나 화법으로 독자는 당황할 수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비유적 표현은 있으나 문장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서 예상보다 크게 난해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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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으로 읽히는 이 소설은 한바탕 소용돌이치는 풍자극같다. 직.간접적으로 언론 조작 및 억압, 난민, 고아, 가짜 뉴스, 보이주기식 행정 및 고위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정치가 및 학자의 망명, 자본주의와 성공 우선주의식 무한 경쟁, 마약 카르텔 등 헝가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여러 부분들을 짚으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실재성, 왜 살아야하는가를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주로 교수의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무한한 어려움」과 「헝가리인들에게 고함」이 그렇다. 이 우당탕탕 코미디 같은 북새통 속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은 노숙자나 집시, 가난한 (이주) 노동자, 부랑자와 고아 같은 하층민의 삶이다. 저마다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갔다 우르르 몰려다니지만, 그 돈의 행방이 어디로 가든 혹은 그 돈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위생과 청결을 위해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도덕의 타락은 가뿐하게 눈감아 버리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일갈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일테다.



도입부 「경고」의 화자인 악단 단장은 단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연주자들과 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누구도 이 공연을 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경고한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여기서 모든 것을 감독하는 자요, 무엇도 창조하지 않고 그저 모든 소리 앞에 존재하는 자요, 신의 진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는 자 (p17)'라고. 마지막 장章의 제목이 「연주용 참고 자료」라는 점을 들어 작가는 이 소설 전체를 하나의 곡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사회'라는 틀을 하나의 곡에 빗대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기에 소설의 인물과 소재들이 '연주용 참고 자료' 목록에 올라가 있는 건 아닐까. 아무튼 꼬리를 물던 생각의 끝은, 「경고」의 내용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전하는 역설적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라는 것.


우리가 안전하고 평온한 사회를 바란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끔찍한 강력 범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참혹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살해와 강간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지경이다. 경찰은 필요에 의해 범죄조직과 손잡기를 마다하지 않고, 정부 인사들은 제 잇속 차리기에 바빠 국민의 안위 따위는 관심도 없다. 권력자들의 가짜 뉴스와 언론 조작은 일도 아니다. 자연 재해든 인재든 피해가 발생하면 가능한한 숨기고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 종교의 수장은 신의 이름을 빌어 여론을 선동한다. 이것이 작가가 바라본,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단면이다. 그는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그려내며 피에로의 얼굴을 하고 일침을 가한다.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거냐고.


모순과 부조리, 인간의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아무렇지 않게 버무려 한편의 묵시록적 블랙코미디를 교향곡으로 완성시킨 작가의 필력. 그저 무겁고 어둡고 난해할 거라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날려버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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