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미리 걱정하지 마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 티베트 속담

예전의 나는 걱정인형이었다. 그 대부분의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

만약 그래서 그게 진짜 일어나면 어떻게 해?

대부분은 그렇게 만약으로 시작해서 내 머릿속 상상으로 현실이 되곤 했다.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칠 때도 있었고, 작은 한 가지 걱정이 사방으로 확장되고 뻗어나가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걱정했던 일들 중에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만약에...라고 걱정했던 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암에 걸렸단 걸 알았을 때 이미 죽음까지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었다. 그걸 어쩌면 미래에 대한 대비라는 말로 돌려서 했는지도 모른다. 결론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미리 걱정에 불과한 것인데.

만약에 내가 죽으면,

만약에 내가 없으면,

만약에... 만약에...

항암해도 암이 없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양쪽 가슴 다 수술해서 잘라내면 어떻게 하지?

수술해도 암이 남아있으면 어떻게 하지?

수술하고 시간이 지나 암이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어쩌지? 어떻게 하지?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하던 모든 일들은 사실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항암 해서 암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수술을 잘 마쳤고, 양쪽가슴 다 수술해서 잘라낼 수도 있단 얘기를 들었지만 양쪽가슴 모두 온전한 모양으로 부분절제 수술을 끝냈다.

그리고 또 걱정하는 재발과 전이에 대한 걱정은 어쩌면 훗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이 생기면 그때 해결할 방법을 찾아도 된다.

대비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암이 전이와 재발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노력을 했는데도 일어나는 일들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로...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을 일. 이 의미 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애들 중학교 가면 중2병 오고 사춘기 심해지면 진짜 힘들다는데 어떻게 해?"

"중2병도 다 오는 건 아니야."

"아니 사춘기 되면 애들 방문 닫고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고 못되게 군다는데 우리 애들도 그럴 수 있잖아."

"여자애들은 어떻게 사춘기가 오는지 알겠는데 남자애들은 어쩌지?"

아이들이 크기 전에 그런 걱정을 했었다. 그 아이들이 커서 중2가 지나가고 고1이 되었고, 둘째들은 또 중2를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춘기 없이 고요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시절 우리의 걱정은 또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이런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에 대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암이 재발이나 전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는 것보다!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가 되지 않게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식단을 반성하고 내일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그래도 시시 때때로 밀려드는 걱정은 참.... 몹쓸 습관 같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