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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n 06. 2024

죽음에 대한 신앙 고백




  독일 출신으로 영국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미하일 하우스켈러 교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아주 어렵고 무거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이며 삶의 목적은 죽음이다.”라고 다소 모호한 설명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을 소환해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그들로부터 답을 찾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한 작가나 철학자들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허먼 멜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니체, 윌리엄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비트켄슈타인, 알베르 카뮤 등입니다.


  그런데 저자인 하우스켈러 교수는 물론이고 열 명 중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화제를 마무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지요. 이분들의 얘기를 듣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자신이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사상가들도 우리의 삶에 대해 함축적인 결론을 제시해 주지 못하면서, 그저 과거의 어느 막연한 순간에 우리는 존재하게 됐고 미래의 어느 막연한 순간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수준에서 맴도는 것이지요. 인간의 언어로는 죽음을 설명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사관(生死觀)은 그들과 좀 다르지요. 일단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성경을 통해서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부활하기 전까지 죽음은 잠자는 것이라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간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하(J. S. Bach)의 음악을 통해 전달받은 가사는 죽음에 대한 어떠한 빛을 보는 듯했습니다. 바하는 독일의 3대 악성으로도 유명하지만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매달 한 곡씩 뛰어난 교회 칸타타를 작곡한 종교 음악가이기도 하지요.


  경건한 분위기의 칸타타를 듣고 가사에 공감을 한 것은 칸타타 8번이었습니다. 칸타타 8번은 모두 6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곡의 가사는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 나는 언제 죽나이까.”로 시작됩니다. 바하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에 의해 얻게 되는 마지막 안식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제6곡에 이르러서는 “죽음과 삶의 지배자여, 나의 최후를 축하하여 주소서.”라고까지 말하는 등 죽음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는 “죽은 뒤에 복이 있다.”든지 죽음은 “수고를 그치고 쉰다.”라는 등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하의 음악에 자극을 받아 저도 자작시로 죽음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죽기 싫다/ 죽으면 평생 사랑하던 아내도/ 예쁜 딸들도/ 손자 손녀 재롱도 볼 수 없다/ 죽으면 정든 금수강산 사계절/ 저 파란 하늘 해 달과 별도 볼 수 없다/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보문산에 올라 외칠 수 없고/ 음악도 듣지 못하며/ 냉면과 자장면도 먹을 수 없다/ 죽으면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내 딸 얼굴 알아 볼 수 있을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내 생각 신념 성격 지킬 수 있을까/ 죽어도 다시 살 수 있지만/ 영혼과 육체 모두 다시 사는 것은/ 십 년일지 천 년일지 신만 아신다/ 그러나 이생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뒤 거듭나는 낙원과 천국에는/ 눈물과 사망이 없으며/ 아픔과 애통함 없는 안식과 영광의 장소라 한다/ 보지 못했어도 믿기만 하면/ 신이 우리에게 죽음 너머 새 생명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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