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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26. 2024

사과는 언제 할 것인가

사과하기에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다.

부부간에도 말다툼을 하고 나면 누군가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 서로 침묵으로 며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침묵의 시간이 무척 불편하고 견디기 어렵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 침묵은 금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이다. 고인이 된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부부가 다툼을 한 바로 그날 안에 화해를 하라고 코칭했다. 바로 당일에 사과하고 화해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과는 언제 해야 효과적일까?


사과에는 빠른 사과와 늦은 사과가 있다. 언제 사과를 빨리 하고, 언제 사과를 천천히 해야 할까? 사과 전문가들은 사건이 덜 심각한 경우에는 즉시 사과하고, 심각한 사건일수록 좀 시간을 가지고, 즉 상대가 분노를 삭이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사과하라고 조언한다.


즉각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았다면 언제 사과할 것인가? 즉각 사과해야 한다. 거리를 가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어깨를 쳤다면 바로 사과해야 한다. 이처럼 우연히 발생하거나 심각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빨리 사과해야 한다. 가해자가 시간을 가진 다음에 사과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해자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거나 친구를 속이고 거짓말을 했을 때와 같은 심각한 사적 가해행위를 저질렀을 때다. 이렇게 심각한 사안에 대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즉각적으로 사과하게 되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 사실에 대해 가해자가 깊이 공감하고 진지한 반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즉각 사과하게 되면 진정성 있는 사과인가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즉각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가해자가 불편한 상황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려는 의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라자르, 232-234).


부부간에 어느 한쪽이 도덕적으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을 한쪽이 그렇지 않은 쪽에게 바로 사과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전문가들은 시간을 충분히 가진 다음에 사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서로의 관계가 계속되려면 부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만약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분리된 장소 또는 심리상담사의 치료실 등에서 만나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못을 한 측이 어떻게 해명하는지, 적절한 보상은 무엇인지, 향후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차분히 논의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잘못이 발각된 뒤에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해명하고 사과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쿨한 사과일순 있지만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과의 타이밍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과의 타이밍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하고 복잡한 상황적 요소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과 타이밍을 결정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로는 잘못의 심각성, 잘못을 가려내는 데 걸린 상대적 또는 절대적 시간, 사과에 대한 요구, 가해자와 피해자의 반응과 결과 등이다. 효과적인 사과를 위한 첫 단추는 사과의 타이밍을 판단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사과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다.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했더라도 사과하는 것이 낫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등 지도자들이 보여준 사과의 타이밍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밝혀져도 우선은 '아니다'라고 잡아떼고 본다. 언론과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가 드러나거나 증인이 나타나면 그때서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나와 주변을 잘 살피겠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한참 지난 사과 타이밍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사과를 해도 그 효과는 떨어진다. 여론에 등을 떠밀려 대국민 사과까지 하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로 존경받으려면 사과 타이밍에 대한 공부를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과일 사과도 수확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퍼런 상태로 수확하는 조생종부터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숙성하여 수확해야 하는 '부사'에 이르기까지 그 타이밍이 다양하다.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사과도 과일 사과의 수확 시기와 유사하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언제 사과해야 효과적인가를 아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자연계의 사과(沙果)도 적절한 수확시기를 잡고 출하했을 때 맛도 좋고 좋은 가격을 받는 것처럼, 인간계의 사과(謝過)도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제대로 사과하면 화가 복이 될지도 모른다.  



라자르, 아론. (2020). 사과에 대하여. 서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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