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서 대신 읽는 소설
되도록 엄마의 차는 타고 싶지 않았다. 오빠와 내가 결혼해서 집을 떠난 이후 엄마 혼자 머무는 집과 마찬가지로 엄마의 2013년식 프라이드 또한 잡동사니로 엉덩이를 디밀 곳이 없었다. 정리엔 젬병이나 다름없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입덧 때문에 버스를 타기 힘든 게 우선이었다.
“엄마 다 왔어. 어디니?”
“이제 지하철 내려서 3번 출구로 올라가요. 3번 출구 앞에서 기다려요. 곧 갈게.”
“천천히 와. 몸도 무거운데.”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매일 출근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낳고 쉬는 게 더 낫다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어금니 꽉 물고 예정일 전까지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입덧이 아예 없던가 금방 끝나던데 나는 임신 말기까지 입덧이 멈출 줄을 몰랐다. 한 동네에 사는 친정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매일 퇴근시간이면 버스정류장까지 데리러 와주었다. 몇 번은 거절했지만 택시 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버스는 더 엄두를 낼 수 없었기에 마지못해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엄마들이란 무릇 딸에게 그 어떤 작은 도움이라도 주지 못해 안달 난 존재들이니까.
뒤뚱뒤뚱 걷는 내 모습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걷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무게는 20kg 넘게 쪘고 몸이 무겁다 보니 관절이 아파 좀처럼 운동하기도 힘들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로 나가니 쌍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는 엄마의 회색 프라이드가 보였다. 차량용이 아닌 자줏빛 보료방석이 깔린 조수석에 앉았다. 몇 번을 잔소리했건만 엄마의 구닥다리 짐은 여전했다. 엄마는 어디가 지저분한 건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출출하지? 오다가 샀는데 이 인절미 좀 먹어봐.”
배가 고프면 속이 더 울렁거린다는 걸 아는 엄마가 어김없이 간식거리를 챙겨 왔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인절미에 무너진 나는 냉큼 떡 하나를 받아 들었다.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동안 콩고물이 시트와 콘솔박스 사이로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 어떡해. 여긴 청소하기도 힘든데.”
“괜찮아. 나중에 핸드 청소기로 빨아들이지 뭐.”
엄마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조수석과 콘솔박스 틈새를 들여다보니 이미 각종 쓰레기들이 번잡하게 떨어져 있었다. 동전이며 과자 부스러기 하다못해 단추에 볼펜까지 별게 다 보였다. 지저분한 건 둘째치고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이틀 후 전철역 3번 출구에 먼저 도착한 나는 이번엔 거꾸로 내가 엄마를 기다렸다. 웬일인지 약속 시간보다 좀 늦는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더니 곧 도착한다고만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내 엄마의 회색 프라이드가 쌍 깜빡이를 켜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차에 몸을 넣는 순간 공기부터 다르다 했더니 엄마의 차는 웬일로 반짝거렸다.
“세차했어요?”
“네가 하도 잔소리를 하기에. 세차장 들렀다 오느라고 늦었어.”
마침 잘 됐다 싶은 나는 커다란 숄더백에서 틈새 쿠션 두 개를 꺼냈다. 운전하던 엄마는 힐끗 보더니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운전석과 콘솔박스 틈, 조수석과 콘솔박스의 틈새에 기다란 회색 쿠션을 꾹꾹 끼웠다. 구멍 뚫린 부분을 안전벨트에 끼우니 고정이 잘 되었다.
“이거 끼우면 이 틈으로 동전 빠질 일도 없고, 전처럼 과자 부스러기 떨어질 일 없으니 깨끗한 상태가 더 오래갈 거예요. 며칠 전에 우연히 보고 주문했는데 오늘 회사로 도착했더라고. 마침 엄마도 오늘 세 차했으니 잘 됐네. 어때요? 아이디어 괜찮지?”
“그러게. 별 게 다 있구나. 세상 진짜 좋아.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필요한 걸 쏙쏙 만들어준다니? 안 그래도 오늘 청소하는데 이 틈에서만 동전이 4천 원 넘게 나온 거 있지. 내가 고속도로에서 통행료 잔돈을 받으면 콘솔박스에 넣는다는 게 마음이 급하니까 맨날 여기에 떨어뜨렸나 봐.”
“동전이면 다행인데 제법 부피 있는 게 빠지기라도 하면 운전할 때 위험할 수도 있어요. 미리 방지하는 게 좋아. 그나저나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우리 차에도 꽂아놔야겠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 속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꽈배기 도넛을 꺼냈다. 배고프지? 하나 먹어, 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나는 흰 설탕이 잔뜩 묻은 꽈배기를 건네받으며 설탕가루가 틈새에 떨어지지 않게 손바닥을 받쳤다. 어쩔 수 없이 틈새 쿠션 위로 떨어진 가루는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틈을 매웠을 뿐인데 사이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꽈배기 도넛은 달고 쫀득했다. 나는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듯 내일은 뭘 사다 줄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뭐든지,라고 대답했다.
끝.
<틈새쿠션 편>
*매뉴얼 노블은 어려운 설명서를 잘 읽지 못하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연재물입니다.
어려운 설명서, 복잡한 구매 후기 읽기보다 짧은 소설 한 편으로 제품이 이해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29CM 앱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