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미식생활 다섯번째, 중곡동 찻집에서 다회를
2020년부터 2021년까지 ㄱㅈㅈㄱ(광진지금)이라는 이름으로 광진구 기반 로컬 큐레이션 활동을 진행했다. 광진구의 골목과 사람을 탐색하고 기록하는 로컬 큐레이션 그룹이자 프로젝트로, 광진구에 거주하는 2명의 친구들과 함께 동네 큐레이션을 진행했었다.
ㄱㅈㅈㄱ(광진지금)은 광진구에 거주하는 상업시설 MD, 마케터, 식문화가로 구성된 동네 큐레이션 그룹입니다.
광진구민의 시선으로 식음료, 상점, 문화공간을 들여다보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제안이 광진구를 낯설게 경험하는 기준이 되기를 바라며 동네에 담긴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약 2년 동안의 활동 동안 정말 많은 광진구의 동네와 가게들을 돌아다녔는데 아직까지도 꾸준히 방문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중곡동의 찻집, '다루'이다. ㄱㅈㅈㄱ에서 한 번 방문한 뒤 너무 좋아서 인터뷰까지 진행했고 그 이후에 다른 친구들과도 방문했는데, 특유의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와 차와 다식의 페어링에 다들 반해 못해도 1년에 두어번은 꼭 다회에 참여하곤 한다.
방문은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업로드는 다소 늦었지만,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보는 그 날의 따뜻한 기억.
다루의 12월 다회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밀향오룡과 다식으로 조란·율란
두번째, 육안차(2012년)과 고구마뺏데기죽
세번째, 다즐링 퍼스트플래시와 슈톨렌
네번째, 유자쌍화차
특히나 22년 겨울에 다루에서 친구들과 먹고 마셨던 홍차에 슈톨렌 조합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는데 이때 함께 방문한 친구는 아직까지도 다루에서 먹은 슈톨렌을 인생 슈톨렌이라고 줄곧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계속 겨울에 한 번 더 방문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12월에 슈톨렌이 나오는 다루의 다회라니 이건 안 갈 수가 없지?
개인적으로는 다루에서 마신 차 중의 최고는 보이차다. 한 모금 마시고 이어서 또 한 모금 더 마시면 토양의 기운을 가득 들이마시듯이 따뜻하고 훈증된 기운이 온 몸을 가득 채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온 몸의 안과 밖이 황토흙으로 찜질 되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열감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 날 첫차였던 밀향오룡과 조란·율란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찻잎의 향을 느끼고 따뜻하게 데운 찻잔에 찻물을 부어 향과 맛을 즐긴다. 밀향오룡의 온화한 꽃향과 단맛이 느껴져 추위에 떨었던 몸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다루하면 다식을 빼놓을 수 없을만큼, 사장님은 차와 다식 모두 조예가 깊으시다. 오늘 첫번째 자식은 조란과 율란. 조란은 찐 대추살만 곱게 가져 꿀과 계핏가루를 섞어 조린 다음 다시 대추 모양으로 빚은 것이고, 율란은 밤가루에 계핏가루와 꿀을 넣고 밤 모양으로 빚은 전통 다식이다. 보드라운 맛에 한 번 놀라고 조란과 율란을 맛본 후 따스한 밀향오룡을 마시며 그 조화에 한 번 더 놀란다.
차를 우려주시는 사장님. 하나 하나 새로운 차를 마실 때마다 어떤 차인지, 어떤 맛인지 조곤조곤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육안차(2012년)과 고구마뺏데기죽.
육안차는 흙차의 일종이라 보이차를 좋아하는 내게 아주 좋았던 차. 함께 내주신 고구마뻿데기죽은 팥, 고구마 등을 넣어 만든 통영 향토음식이다. 고구마를 잘라서 말리던 모양이 비틀어진다고해서 경상도 말로 '뺏데기(빼떼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과거 먹을 것이 없던 시기에 고구마를 수확해 말려놓았다가 겨울에 잡곡 등과 푹 삶아 먹는 영양죽이었다고 한다.
뜨끈하고 푸짐한 죽과 열이 훌훌 나는 육안차를 함께 마시니 따뜻하게 데운 술을 마신 것처럼 몸에 따뜻하게 열이 오른다.
다즐링 퍼스트플래시와 슈톨렌을 먹고 마시기 전 새로운 다구를 꺼내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친구가 오매불망 기다렸던 슈톨렌까지!
다즐링 퍼스트플래시와 슈톨렌
차가 바뀔때 마다 새로운 다구를 써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먼젓번 겨울에는 우유가 들어간 홍차와 슈톨렌이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맑은 차와 즐기는 슈톨렌. 슈톨렌은 브랜디나 럼에 절인 과일과 견과류, 마지팬을 넣어 만든 독일 크리스마스 빵이다. 겉에는 가루 설탕을 잔뜩 뿌려놓고 조금씩 잘라먹는다. 예전에는 파는 베이커리를 찾아가야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상당히 많은 가게에서 다들 만드는 것 같다.
마지막은 감기를 당장에 떨쳐줄 것 같은 유자쌍화차.
유자, 오렌지, 레몬 등 시트러스 계열의 맛을 사랑하고 겨울이면 감기에 안걸려도 편의점에서 쌍화탕을 사먹는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맛이었다. 시간이 꽤 지나 다른 차 맛은 거의 희미해지고 음식 맛만 강하게 기억나는 와중에도 이 유자쌍화차의 진한 맛만은 단번에 떠오를 만큼 인상이 강했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속까지 데워주는 차를 함께 마시니 추위가 봄서리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집에 갈때는 다들 슈톨렌 한 덩이와 차를 사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더욱 따뜻하고 훈훈했던 다회
올해도 3월에 마음에 드는 다회가 있었지만 너무 빠르게 마감이 되어 신청을 해보지도 못했다... 또 다음에 뜨는 공지를 기다리는 중.
언제와도 좋지만, 찬 바람 불때 더욱 생각나는 다루.
추운 날엔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 같은 글을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arundia)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