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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Feb 13. 2023

나는 걷고 있었다

박사과정생의 자기 다독이기

집안행사에서 8촌 올케언니를 만났다. 사실 말이 8촌 올케언니이지, 처음 뵙다시피 하는 분.


요즘 치매인 친정부모님을 돌보고 계신다는 말에, 나는 이러저러한 경험 때문에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내 마음과 경험과, 그리고 부족하지만 나의 지식을 다해 말씀드렸다.


절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마시라.

애초에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얽어 묶지 마시라.



내 이야기를 듣던 올케언니는 마치 저 바닥에 숨겨놓았던 자신의 마음을 내 입을 통해 확인하는 듯 부끄러워하시며 웃었고 마음을 열어주셨다.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참 하기 힘든 이야기라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동생과 남편에 대해 이야기했고 친정의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털어놓으셨다. 내 이야기와 조언이 언니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부끄럽게도, 그러한 언니의 얼굴과 눈빛에서 내가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그런 설렘과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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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비슷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늘 비슷한 자책을 한다.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하고 그 기도에 미치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나를 보며 또 자책한다. 그런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책만 하며 길바닥에 엎드려있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사실은 매 순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무수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일을 걷고 있었고 그 덕분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지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서서히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며칠 전 감사한 지인과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나를 위로하'그래도 힘들어도 버틸만하니까 중간에 그만두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안 그랬으면 벌써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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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한 건 물론 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내 의지만은 아니었다. 그분이 함께 하셨고 그래서 이 길을 두드렸고 걷기 시작했다. 안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건 일어나는 것. 넘어졌을 때 그분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기. 그리고 그 분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걸어가기.



베드로 신부님의 말씀처럼 그분이 시작하셨으니 그분이 잘 마무리해 주길. 마음 다해 청하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하루하루 살아가기.



사진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흰 눈 쌓인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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