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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ug 17. 2023

외동딸의 유일한 보호자

평범한 우리 아버지

지금은 당연히 힘들지. 시련이야. 근데 겪어내면 다 네 능력이 되고 힘이 돼. 아빠도 그랬고, 오리온 같이 다니던 아빠 친구들이 젊어서 회사 관두고도 다 그럭저럭 또 다른 일 찾아 하면서 잘 살았거든. 그게 오리온 다닐 때 단련이 되어서 그런거야. 아빠 때는 회사가 참 힘들었단 말이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






학교 관련 일에 대해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다는 말은 하지만, 요즘의 내 마음 상태나 뭐...기분이랄까 그런 깊은 내면은 아버지한테 잘 이야기하진 않는다. 엄마였으면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친한 부녀사이라도 딸과 아버 사이는 모녀간 하고는 또 좀 달라서.

그런데 아버지 친구 손소장님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늦은 밤까지 길어졌다. 부모님이 젊었을 때 정말 훌륭히 열심히 살았다는 나의 치하와, 저 나이들고 공부만 하고 있는 딸내미를 어찌 먹여살려야 하나 하는 아버지의 속마음과(이건 진짜 처음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 니네 엄마가 너 어릴 때부터 너한테 글 읽어보라 하고 글 쓰라고 한 게 있느니 당연히 뼈에 글쓰는 감각이 새겨지다시피 했을 거란 이야기, 엄마가 뇌에 병이 생긴 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나이 들어서 너무 공부를 했던 것도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버지생각과 엄마가 했던 작업을 하고 있는 딸에 대한 염려, 그리고 자신들 세대가 우리나라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켜놨지만 자식들 교육은 잘못시켜서 지금 사회가 이모냥이 됐다는, 친구들과 나눴던 자조 어린 이야기,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 요즘 사는 게 만만치 않다고 아유 힘들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맨위에 적은 저런 말을 해줬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사회적 지위를 크게 누린 것도 아니고 그저 온화하고 성실한 것이 엄마와 내가 생각하던 아버지의 장점이었다. 사실 내가 삶에서 큰 선택을 하거나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땐 엄마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상대이자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분위기는 친한 5촌 당숙 같은 느낌이었다랄까.


그러다 마누라가 죽고는 자신이 하나 뿐인 외동딸의 유일한 보호자란 각성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갑자기 엄청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멋진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그래도 이전보다는 자주 보였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버지가 환갑 즈음에는 이렇게 멋진 말을 못했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 멋진 말을 할 수 있게 됐냐고, 인생을 통찰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냐고 물으며 놀렸더니, 아버지가 민망한 듯 웃으며 칠십이 넘어서야 되더라..라고 했다.






인생이 참 짧다. 사진 속의 나는 아마 한국나이로 네 살 쯤 되었지 싶은.

사진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몇 살 젊었을 것이다. 저 때 아버지가 입었던 티셔츠와 내가 입었던 옷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아버지는 70대 후반의 노인, 나는 40대 중반의 중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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