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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05. 2023

벌써 10년.

엄마 10주기 기일 하루 전날.

내일이 엄마 기일인데 연미사 넣는 것을 깜빡했다. 아니, 깜빡했다라기보다 뭔가 연미사 신청할 짬을 못 냈다고나 할까. 기일 아니어도 엄마 생일 때나 축일 때도, 그리고 그냥 별 이유 없이 연미사 가끔 넣으니까 엄마가 서운해하진 않겠지, 뭐.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기억이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다. 가을이 익어가는 이 시기가 그렇다. 10년 전 이쯤의 나는 홑겹 외투를 입고 병원과 집과 장례식장인 성당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발인날인 11월 1일이 되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졌고, 양양에 있는 집안 납골묘까지 가기에는 홑겹 외투로는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인날 새벽 겨울용 솜외투를 급히 꺼내 입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연도에는 언제 겨울용 외투를 꺼내 입기 시작했는지 당연히 생각도 안 나고 관심도 없지만 10년 전엔 언제 겨울외투를 꺼내 입었는지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머리에 새겨져 있다.



몇 년 전, 모교 은사님이 정년퇴직을 하신다 해서 퇴직축하연에 다녀왔었는데, 하도 오랜만에 뵈었고 엄마를 두어 번 정도 만나신 적이 있었던 지라 엄마가 몇 해 전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더랬다. 교수님은 안타까워하시며, 그랬구나.. 나도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말씀을 하셨다. 환갑이 넘으신 남자 어른께서, 그분의 젊은 시절의 삶이 마냥 순탄하지 않았던 걸 아는 나로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참 놀라웠다. 이 나이 많은 그야말로 '어른'께도 부모님의 상을 당한다는 건 나와 다를 게 없는 커다란 의미이구나 싶은.



박사졸업이 늦어진 한심한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고, 수필계 어른들께도 제법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면 참 기뻐할 텐데,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엄마의 꿈은 학교 선생이 되는 거였다. 고졸에서 방송대를 거쳐 경원대 석사까지, 그리고 수필작가로서의 등단까지, 엄마는 그 꿈 비스무리하게 살기 위해 참 노력을 했다. 대학을 보내지 않았던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말이다. 엄마는 중고등학교 교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필창작 강의를 도서관이나 중고등학교에서 제법 했었다. 수필가로 상도 받았었고. 그런 엄마에게 딸이 학생들 앞에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자기 이름으로 뭔가 끄적인 걸 계속 발표한다는 건 꽤 행복할 일이었을 것이다.



제수용 사과로 아주 크고 비싼 걸 사 왔다. 내일 아빠랑 엄마 제사 잘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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