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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05. 2023

내가 나에게 건네는 눈물과 위로의 악수

청소를 하다가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 썼던 '최초의 시'가 갑자기 떠올랐다.



엄마가 늘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으니 아마 나도 뭔가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문방구에서 산 새 공책을 꺼내서는 꽤 진지하게 썼었는데,

겨울이 되어 추워지면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꽃도 추워서 죽어버리니,

겨울이 되기 전에 따뜻한 우리집으로 세상의 모든 꽃과 나무들을 데리고 오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세상의 모든 꽃과 나무들을

따뜻한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으면..'

아마 이렇게 끝났던 듯.


신기하게도 이미 행과 연의 개념이 명확했었다.

엄마한테 따로 배웠던 기억은 없는데. 아마 엄마가 썼던 시를 옆에서 보면서 뭔가 감을 잡았던 듯싶다.

엄마는 그때만 해도 수필보다 시인으로 등단하고 싶어 했다.

엄마는 내 시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많이 칭찬해 줬고 주변에도 꽤 자랑했던 기억도 있는데,

사실 당시의 나는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늘 했던 생각을 옮긴 것뿐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기뻐하는지 아주 명확하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마음도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요즘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걸 나는 이미 그때부터 하고 있었구나. 그 참..


사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서른 살이 넘고서야 제대로 알게 됐고, 30대 중,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런 성격을 괴로워했으며, 그런 나 자신을 '문제적 인간'으로 여겼다.

주변에 나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예민한 성격이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았고, 그것은 상대가 나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약점이 되기도 하더라.


자타의 공격으로 인해 참 오랫동안 힘들어하다가, 역시 내 취미이자 특기인 '산책하며 생각하기'를 통해 그것이 '축복'일 수 있음을 깨달았으며, 요즘에는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있고, 또 감사하게 여기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다섯 살 즈음에 쓴 '인생 최초의 시'는, 나 자신을 다시 인식하게 했다.

아하, 나는 이미 그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인간이었구나.

그리고 그건 엄마가 주변에 자랑을 할 만큼의 달란트였구나 하는.


그간 꼬마였던 나에게 중년의 내가 많이 잘못했던 거였다. 꼬마가 갖고 있는 그것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주고 다독여줬어야 했는데...


지금 쓰고 있는 이 짧은 글은 '중년의 최유나'가 다섯 살의 '꼬마 유나'에게 건네는,

윤동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인 셈이다.


집 어딘가에 그때의 공책이 있을 텐데..

그때의 그 시를 다시 읽게 되면, 뭔지 모르게 참 감동적일 것 같다.



그림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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