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들 만나고 오신 아빠랑 밤에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아빠 친구들이, 최소장만큼 박복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고, 어제도 그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었다. 마누라는 죽고, 본인은 그 직전에 허리 수술을 해서 마누라 임종은 커녕 장례식장에도 못 가고 병원에 누워있고, 어린(30대 중반이라도 아빠 친구들 보기엔 그래 보였나봄) 딸내미 혼자 빈소 지키고 있고. 진짜 걱정됐는데 지금 잘 지내는 거 보니 참 다행이다, 하셨다고.
그래서 아빠가 친구들에게 말씀하시길,
마누라 아픈 2년 동안 딸도, 자기도 참 힘들었고 어쩌면 우리 가족 전체가 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은 시간을 보냈는데 한 십 년 지나니 그래도 그럭저럭 지내게 되더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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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의 결이 케시미어 같다면, 아빠는 타올지 같다고 해야하나. 적당히 투박하고 공감하는 마음도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두껍고 적당히 꺼끌꺼끌한 뭐, 그냥 일반적인 아저씨다.
근데 그런 아빠의 입에서, '우리 가족 전체가 다 사라질 수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말에 마음이 찡하면서도 뭔가 아팠다. 가끔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치인 것 같고 버거웠던 순간이 아빠에게도 있었고, 딸이 그러한 시간들을 꽤나 길고 심하게 보냈다는 것도 아빠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
하긴 엄마보다 아빠가 엄마를 더 좋아했지.
생각해보면,
오늘도 무사히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을 틀어놓고, 내 방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친구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의 카톡을 보내고, 친구 어머니가 잔뜩 주신 고구마를 쪄서 그것을 벗겨 먹고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이다. 우리 가족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을 갖고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뭐라 감사의 기도를 올려도 부족한 기적.
당연한 말이지만, 일상은 순조롭지만도 평화롭지만도 않다. 특히 나의 일상은 긴장감 가득하고 자책감과 불안함이 가득한, 무언가의 데드라인과 평가가 늘 있고 뭐 그런.
그래도 오늘은 컨디션 괜찮냐는 진심 어린 걱정과 아버지랑 먹으라며 반찬과 고구마를 그득그득 담아주는 마음과, 졸린 눈을 비비고 함께 미사에 동행해주는 마음과, 버려진 식물을 주워다 예쁜 화분에 심었는데 잘 키울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괜히 데리고 왔나 싶기도 하다고 허허 웃으며 자기의 일상을 나누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금의 내 주변에 곱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살포시 내려앉아 나를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