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나 Nov 06. 2023

아무렇지 않은, 빛나는 이야기들

어제 친구들 만나고 오신 아빠랑 밤에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아빠 친구들이, 최소장만큼 박복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고, 어제도 그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었다. 마누라는 죽고, 본인은 그 직전에 허리 수술을 해서 마누라 임종은 커녕 장례식장에도 못 가고 병원에 누워있고, 어린(30대 중반이라도 아빠 친구들 보기엔 그래 보였나봄) 딸내미 혼자 빈소 지키고 있고. 진짜 걱정됐는데 지금 잘 지내는 거 보니 참 다행이다, 하셨다고.



그래서 아빠가 친구들에게 말씀하시길,


마누라 아픈 2년 동안 딸도, 자기도 참 힘들었고 어쩌면 우리 가족 전체가 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은 시간을 보냈는데 한 십 년 지나니 그래도 그럭저럭 지내게 되더라.. 라고.



--



나는 감정의 결이 케시미어 같다면, 아빠는 타올지 같다고 해야하나. 적당히 투박하고 공감하는 마음도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두껍고 적당히 꺼끌꺼끌한 뭐, 그냥 일반적인 아저씨다.


근데 그런 아빠의 입에서, '우리 가족 전체가 다 사라질 수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말에 마음이 찡하면서도 뭔가 아팠다. 가끔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치인 것 같고 버거웠던 순간이 아빠에게도 있었고, 딸이 그러한 시간들을 꽤나 길고 심하게 보냈다는 것도 아빠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



하긴 엄마보다 아빠가 엄마를 더 좋아했지.



생각해보면,


오늘도 무사히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을 틀어놓고, 내 방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친구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의 카톡을 보내고, 친구 어머니가 잔뜩 주신 고구마를 쪄서 그것을 벗겨 먹고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이다. 우리 가족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을 갖고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뭐라 감사의 기도를 올려도 부족한 기적.



당연한 말이지만, 일상은 순조롭지만도 평화롭지만도 않다. 특히 나의 일상은 긴장감 가득하고 자책감과 불안함이 가득한, 무언가의 데드라인과 평가가 늘 있고 뭐 그런.



그래도 오늘은 컨디션 괜찮냐는 진심 어린 걱정과 아버지랑 먹으라며 반찬과 고구마를 그득그득 담아주는 마음과, 졸린 눈을 비비고 함께 미사에 동행해주는 마음과, 버려진 식물을 주워다 예쁜 화분에 심었는데 잘 키울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괜히 데리고 왔나 싶기도 하다고 허허 웃으며 자기의 일상을 나누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금의 내 주변에 곱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살포시 내려앉아 나를 지켜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나에게 건네는 눈물과 위로의 악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