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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08. 2023

Pujol의 septiembre

내 수필에 종종 등장하는 27년 지기이자 대녀인 친구가 뉴욕 여행 중 식물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식물원 구경 갔는데 정말 평화로웠다고. 전에는 여행 중 쇼핑도 하러 다니고 했는데 이젠 다 귀찮고 이런 거가 좋아지다니 나이가 들었나 보다는 말과 함께. ㅎㅎ


서로 장거리 여행을 갈 때마다 (그래봤자 난 늘 일본이었고 얘는 늘 미국이었지만. 혹은 둘 다 가끔 제주도.) 선물 하나씩 사들고 와서 주고받고 했었는데, 그런 것도 이제 30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에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내 선물 살 생각은 말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니라.. 했더랬다. 알겠다고 하더니, 거리를 지나가다가 아무리 봐도 최유나 취향인 게 보이길래 다른 쇼핑은 안 했는데 니 건 사뒀다고 했다.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라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 얘나 나나, 그간 참 서로 노력하며 잘 지냈다. 투닥거렸던 일이 아주 없었다 할 순 없지만.



...


기타 선생님이 이번 추석 연휴가 너무 길어서 오늘 학원문을 연다며, 꼭 오라고 하시길래 기타를 둘러매고 다녀왔다.


새로 레슨 받는 곡으로 Pujol의 septiembre 악보를 주셨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제목은 셉템버, '9월'을 의미하는 거였고 멜로디를 보니 클래식 기타곡이 모인 cd에 자주 실리던 곡이었다. 기타를 갓 배우기 시작할 때 줄리안 브림이나 안형수, 이병우, LA 기타 콰르텟, 우리 선생님이 활동하셨던 서울기타 콰르텟 등등의 연주곡들을 들으면서 기타로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까 신기하게 생각했던 걸 떠올려보면, 감상하던 곡의 악보를 보고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촌놈이 출세한 것'과 다름없다. 물론 완성도에서는 프로 선생님들과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당연히 나지만.



푸졸이 아마도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9월은 참 평화로웠나 보다. 안단테의 빠르기에 샾이 두 개 붙은, 그러니까 여유롭게 흐르는 라장조의 멜로디는 늘 전전긍긍인 내 마음에 폭신한 이불을 덮어주는 듯 하다.


기타 선생님 부부와도 20년 지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들이다. 어설픈 친척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언제나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어주시는.


....


어제는 저녁에 너무 졸려서 이불 깔고 일찍 누웠는데도 몇 시간이 지나도 막상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미적거리다가 결국 새벽에 다시 일어나 논문 끄적이다 잤다. 오늘은 뭉그적거리 말고, 클래식기타 연주곡들을 유튜브로 틀어놓고 계속 타자 두드리다가 진짜 쓰러질 정도로 졸릴 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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