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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12. 2023

10년 전 오늘.

우리집 베란다 앞에는 아빠가 자그마하게 가꾸는 꽃밭이 있는데 백합이 폈다지고, 수국이 폈다지더니, 이제 국화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가 아주 많이 아팠던 7년 전 즈음. 엄마는 아마도 의사를 만나고 집에 오던 길이었던 거 같고, 나는 나대로 외출을 하고, 서현역에서 둘이 만나 콩나물 국밥을 사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의사가 말하길, 아빠가 상황이 아주 안 좋아질 수 있는 것도 염두에 두라고 했다. 아빠가 나이가 60이 넘었으니 사실 이제 작은 나이는 아니고 하니 너도 맘 단단히 먹어라.


그 말 듣고 내가 삐질삐질 울으며 그랬더랬다. 아빠 없으면, 아빠가 키우던 꽃밭을 어떻게 볼 수 있겠냐고,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다고 말이다. 그리고 보니, 그때 아빠도 환갑을 갓 넘기자마자 아팠더랬네.


기적처럼, 그 후 약 7년 동안 나는 마음 편하게 계절에 따라 변하는 꽃밭 풍경을 지켜볼 수 있었고, 아빠는 부지런하게는 아니지만 지금도 일요일 아침이면 잠깐 꽃밭을 돌본다. 그리고 뚱이는 그런 아빠를 베란다에서 내다보고 있고...


난 생긴 거는 참 세상물정 모르게 생겨서는 의외로 무지하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거 같다. 요즘은 시간에 휩쓸려가는 것 같아 정신이 없다.



2013. 10.19. 페이스북에 올린 글.



ㅡㅡㅡㅡㅡ



10년의 오늘 날짜에 남겼던 글이라며 페이스북에 떴다. 13년 10월 19일이었으면, 엄마 돌아가시기 열흘 전.



아빠는 13년 10월 19일 이후, 세 번의 척추수술을 받고 나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화단 가꾸는 것이 더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집 베란다 앞의 화단은 서서히 없어졌고 이런저런 과정 끝에 지금은 수국과 박태기나무만 남았다.


그래도 수국이랑 박태기나무가 아주 잘 자라서 지금은 상당히 커졌다.



10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 것 같기도 하고, 10년 전을 생각하면 그땐 어떻게 살아냈나 아득하기도 하고, 그간의 10년을 거슬러거슬러 올라가 보면 힘들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일들도 있었고 또 해냈다 싶기도 하고. 가을이 물들어간다.



조급해하지 말자.

...... 언젠가는 인정받게 되어 있다. 우리 인생에는 예비되고, 계획된 인정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ㅡ 강원국 작가의 스레드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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