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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12. 2023

어른이 아직 못 된 자가 갖고 싶은 '어른의 깜냥'

언젠가 우연히 만났던 초등학생 아이를 또 만났다. 처음 보는 나에게 어른이라고 꼬빡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귀여웠는데 오늘도 마주치는 모든 어른들께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고, 아이도 날 보더니 기억난다고 했다. 그냥 길가에서 마주치는 어른들한테 그렇게 다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를 했고, 전에 3학년이라고 했었던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5학년이라며 자기가 키가 작아서요..라고 말끝을 흐리길래, 남자애들은 나중에 훌쩍 크니까 괜찮다는 말을 해줬다. 뭔가 자기 키가 작은 것이 아이에게 벌써 고민인가 싶어서, 아이의 등 뒤에다 진짜야, 남자애들은 나중에 아주 많이 커..라고 다시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고맙다며 상가에 있는 학원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에게 예절 있게 인사하는 건 분명 기특하고 귀여운 일이지만, 자기가 상대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인사를 하는 모습과, 키가 작다며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괜히 뭔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키가 작아도 괜찮고, 그저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인사를 하나하나 다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착하고 여린 마음에 상처받지 않은 상태로, 그 예쁜 배려심이 어른이 될 때까지 그대로 보호되고 지켜지면 좋을 텐데. 우리 사회가,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그런 깜냥이 과연 되는지.



...



집 앞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벌써 뚝뚝 떨어지고 있다. 덥지만 가을이 오고 있고, 벚나무 잎사귀에도 붉게 가을이 내려앉고 있다. 이번 여름을 이전의 여름 같이 보냈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책감에 말할 수 없이 괴로운 가을을 맞았을 텐데, 그렇지는 않아 다행이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선택과 집중.



며칠 전엔 컴퓨터 작업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고 하다가, 이번엔 마우스 때문에 손목이 아프다는 딸에게 나이 든 아버지는 옅은 연민의 눈빛을 보내며 서랍에 파스가 있으니 바르라고 했다. 아버지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최소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겠지. 저녁에 집에 들어가거든 둘이서 소소하게 아버지 생일을 축하할 예정이다. 아버지 팔순 때는 아버지 친한 친구들도 모시고 대접하고 싶은 마음인데, 아직 2년이 남아 다행이다.



...



그분은 뭔가 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겠지. 부족함에 좌충우돌이지만 그러시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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