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Dec 03. 2023

나태지옥 타파한 알바 체험기

내 나이 50살

직장을 그만둔 지 7개월이 넘어간다.

큰딸의 고3 수험생활도 끝났고... 사실 딸의 입시와 상관없이 게으름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렇게나 게으를 수 있을까? 싶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발을 신어보지도 않은 채 며칠이 흐를 정도였다.

사실 나이가 있으니 입사지원을 해도 서류전형에서 탈락했고,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월 천만 원씩 버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던데 나는 아이템도 자신도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책을 읽기만 하고 있었다. 실행 없이...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 근처 식당에서 10일짜리 단기 알바를 구하길래 지원을 했고,

연락이 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식당은 일평균 9백만 원 정도 매출이 일어나는 아주 바쁜 도가니탕 설렁탕 집이었다.

하루 일하고 나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을 만큼 너무 들었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고, 손목은 시큰거리고, 9시간 동안 밥 먹는 시간과 중간휴식 30분 빼고

엉덩이를 어디에 붙여 볼 틈도 없이 일하다 보니 허리며 다리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었는데, 나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 같아 일단은 참아보기로 했다.

설상가상 생리일과 겹쳐서 생리통까지... 진통제로 버티면서 바쁘게 일을 했다.

3일쯤 지나자 정신이 좀 차려지기 시작했고, 몸도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태해질 때 일부러 새벽시장에 나가 이른 시간부터 바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러 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나 또한 일을 하면서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몸으로 일한 지 오래되어 이력이 붙어 덜 힘들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가끔은 빌런스럽게 일하면서도 불평불만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을 움직여 일하다 보니 그때의 그 불평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식당 서빙을 하며 손님들의 황당한 불만도 듣게 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회사는 천국이었구나 싶었다.


집에 오면 시체가 된 듯 쓰러져 자고,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고 나가기 바쁘게 열흘을 살다 보니

집안상태는 엉망이 되고 무엇보다 이상한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당이 매출이 많고 바쁘다 보니 시급이 13,000으로 최저임금에 비해 조금 높았다.

음식을 사 먹거나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식구들에게 돈으로 잔소리를 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4만 원짜리 외식을 하게 되면 "이게 나의 몇 시간의 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게 되었고,

쓸데없는 곳에는 쓰지 말고 아껴 써야겠다를 넘어서 돈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가족들은 평소에는 듣지 않던 잔소리를 듣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웃픈 일은 시댁에서 내가 식당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시어머님이 너무 슬퍼하시며 용돈을 보내주셨다.

당신 아들이 능력이 없어 며느리가 식당일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오해하신 듯싶어서 설명을 드렸으나

막무가내인 어머님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0일간의 약속된 알바가 끝나면 식당알바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나도 디지털노매드 하고 싶은데 실행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막막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뭐라도 시작을 해야 상황이 달라질 텐데 생각만 하고 있으니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핑계를 찾지 말고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의미 없이 게으름 피우면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워서 시작한 알바지만 돈 이외에 많은 것을 얻었다.

당장 게으른 생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무엇을 하든 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있고,

다시 한번 별 일없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고3 수험생 엄마의 깊은 고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