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런 날씨

by Chorok Yun


어제 날씨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였다. 이 '호'가 정확히 어떤 온도와 습도인지, 어떤 상태인 건지 수치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다만 그렇게 적응하기 어려웠던 독일에서 몇 안되게 나와 잘맞는 것을 몸이 자동으로 기억하게 돼버렸는데 이 날씨가 그중 하나이다. 독일을 까맣게 지운지 오래지만 그때의 대기 상태와 분위기를 연상케하는 날씨가 느껴지면 그즉시 그때의 시공간으로 주위가 덧입혀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적당한 쌀쌀함에서 오는 상쾌함, 공간이 광활하게 비어있는 듯한 건조함과 명료함.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을 맘껏 맞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아방가르드?한 화성을 즐기고 있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늦가을의 풍경이 이 날씨에 맞춰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이 정도면 촉각, 청각, 시각의 삼단콤보 행운이 맞아떨어지는 귀한 날이다.


말라가고 지느라 원래의 형태에서 완전히 쪼그라진 잎사귀의 어두운 빛깔이 밝은 라임과 금색을 띤 온전한 잎사귀와 대비되어 만들어진 풍경은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서 봐왔을 계절의 모습이건만 내눈앞에 처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낙엽현상인가, 아니면 중년에 접어든 세월의 성숙함이 선사한 새로운 시각덕분인가? 저물어가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일 수 있다니...




이럴 땐 무조건 그려야 한다. 작년 이사하면서 무리하게 투입했던 인테리어 비용으로 집에는 아직도 책상과 의자가 없다. 방바닥에 대충 재료와 스케치북을 널어놓고 오늘 마음껏 누렸던 풍성함을 풀어내본다. 표현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서 아쉽지만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

어떤 날씨는 생의 풍성함을 보장한다. 날씨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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