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과 살아가기 46
딸이 크론병을 앓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가 났던 2020년 4월이었다. 그때 크론병을 앓던 딸은 중3,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3년 차이 남매는 찐 남매라 서로 딱히 친하지도 딱히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그런 사이다. 누나가 병원에 입원하고 집에서 아플 때도 찐 T인 아들은 누나를 겉으로는 걱정하거나 안쓰러워하거나 하지 않은 듯했었다. (물론 마음속은 내가 알 수 없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자체는)
1월, 2월에 안 그래도 말이 없는 아들이 관리형 독서실 다니면서 힘들었는지 더 말이 줄어서 많이 걱정했었다. 3월이 되고 이제 진짜 고3이 되니 오히려 마음은 좀 편해졌는지 예전처럼 학교에서 있던 일들도 곧잘 이야기를 해 준다. 아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 반에 크론병인 친구가 있어."라고 했다.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 학원도 같이 다니는 J라고 한다. 오늘 J가 2교시 끝나고 조퇴해서 병원 진료를 갔다고 했다. "그런데 J가 크론병인 건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어보니 "J가 이야기했어."라고 했다. J가 병원에 간 후에 J가 크론병인 것을 알고 크론병은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들은 아이들 몇몇이 "그런데 J는 군대 안 간대.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는데,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군대 가는 것이 낫을 걸."
"군대 가는 것이 낫을 걸." 아들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부엌에 컵을 가지러 가는 척하며 눈물을 얼른 닦아내면서 아들의 등 뒤에서 "너 정말 잘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누나가 크론병을 앓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관심은 없는 줄 알았던 아들이 누나가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 진료를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고, 때로는 잡히지 않는 수치 (칼프로텍틴, 혈액 수치 등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짧은 한 마디로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크론병을 앓고 군대를 안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던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인식의 변화가 있다면 작은 변화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들이 정말 고마웠다.
가끔 수업하러 오는 아이들이 "선생님, 내일 아파서 학교 안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철없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프다. 정말로 너무 아파서 학교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 철없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평소와 달리 조금은 엄하게 혼내곤 한다. 아직도 크론병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친구들이 본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만나 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아들의 한 마디는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