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열망하다.

칭다오(靑島)의 눈물

by 윤재훈


알은 깨어나기를 원한다.

깨어나야만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릴 수 있다.


나는 지금 열하를 건너는 비행기 안에 있다. 그 옛날 연암 선생은 이 험난한 바닷길을 돛단배나 노 젓은 배에 의존해서 건넜을 것이다. 일기예보도 없는 이 먼 길을, 오직 바닷길에 이골이 난 뱃사공에 의지해서, 자연의 순리인 바람을 따라 끝도 모를 길을 나섰으리라. 그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을 순간, 나는 편안하게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 만에 “중국 속의 유럽‘ 청도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내 몸의 체온처럼 이어지는 36, 5키로의 눈부신 바닷길,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잠시 고국에 대한 생각을 놓고 이곳에 집중하리라.



산보 나온 많은 현지인들이 보이고, 중국 속에 어울리지 않게 빨간 뾰족 지붕들도 많다. 그러나 그 붉은 지붕 속에는 이곳 칭다오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일치감치 산업혁명을 이룩한 유럽 열강들은 그 잉여에너지를 약한 나라 속국 만드는데 열중했고, 노예화 시켰다.



그 틈바구니에서 인구수만 많았지 서양에 비해 문물이 늦었던 아시아의 거대 제국은, 그들의 발길 아래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인 조차지(租借地)까지 내주고, 50년 동안 못 본 척 하며 살았다.

그리고 고향의 맥주맛을 잊지못한 독일( 德國, 제국주의의 산물인가?)인은 인근 라오산의 맑은 물을 이용하여 칭다오 맥주를 생산하였다 그것이 중국의 대표 브랜디가 되었고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화로 발돋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의 이이러니가 아날 수 없다.



그 후 제국주의들의 야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제 1차 세계대전으로 패전국이 된 독일이 산둥성에서 가지고 있던 권리와 이권들을 일본에 양도하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베이징 학생 3, 000여명이 1919, 5, 4일, 바로 우리가 일본치하에서 3, 1만세를 부르던 그 암흑의 시대에, 천안문 광장에 모여 반대집회를 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급속도로 확산되어서 중국 전역을 반일, 반독으로 들끓게 했고, ‘아시아 민족의 전쟁 원흉, 슬픔의 산물’ 일제는 1922년에 물러났다. 이것이 그 유명한 5. 4혁명이다



그 슬픈 역사의 땅이 지금 비행기 아래로 치솟은 빌딩과 은빛 바다로 눈부시게 펼쳐지고 있다.



과거는 반성하고 사죄하고, 청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온전하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제는 전쟁 만행도, 아시아 여인의 정신대도, 오직 거짓말로 일관하며 세계인과 피해 당사국으로부터, 나아가 자국민들에게까지 지탄을 받고 있다. 그나마 독일 같은 나라는 반성하고 청산할 것은 청산하니, 세계가 박수를 보내고 국민들의 화합의 씨앗이 되지 않는가, 친일(親日)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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