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에서 알마티까지
실크로드의 강자, <소그드인>
우루무치를 시내를 막 벗어나는가 싶더니 황량한 사막이 기차의 차장에 따라붙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수만 년 마르고 말라 백골이 되어버린 지역은 눈이 부시도록 처연하다. 저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싶은데,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민족들은 서로 죽이고 죽은 살육의 전쟁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실크로드를 <소그드인>인들은 무려 700년이나 지배해 왔다. 자손에 자손들이 낙타와 말들을 타고 그 길을 오고가며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 역사의 길을 나는 지금 편안하게 열차를 타고 간다. 그러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소그드인들은 중국 땅에서 씨가 마르게 된다.
그는 이란계 소그드인의 아버지와 돌궐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6개의 언어에 능통할 정도로 총명하여 북쪽 교역장의 통역과 중계인을 하며 부를 축척하였다. 그 후 742년에 평로절도사가 되고, 현종에게 뇌물을 바치며 양귀비의 양자로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평로, 범양, 하동 등 무려 세 군데 절도사를 겸임하면서 현종의 총애를 과시하는 한편, 당나라 전체 절도사의 병력 중 무려 3분의 1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권력이 비대해지며 딴 생각을 품는 모양이다. 그는 양귀비의 사촌 누이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양국총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그 결과 8세기 가장 규모가 크고 치열했던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그 후 소그드인들은 그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하고 중앙아시아로 쫒겨나 자신들의 조그만 오아시스 도시 <소그드니아>로 가지만, 그곳에서조차 거대한 이슬람의 민족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그 후 이 땅은 다시는 오랑캐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아 막아 버린다. 이제 풀을 따라 초원을 가로지르던 유목민들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곳에 정착하니 점차 초원은 사라지고 사막이 되어 버렸다.
아, 카자흐스탄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거인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 카자흐스탄에 가까워 진 모양이다. <이닝> 역를 지난 열차는 중국 국경의 마지막 역 <후얼 꾸어 쓰>에서 모든 짐을 들고 내리라고 한다. 국경 열차 안에는 영어를 하는 승무원은 없다. 젊은 승무원들조차 모른다. 대합실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유일했던 승객인 서양인 4명은 멀리 보이는 시가지에 쇼핑이라도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댜? 화단에는 목마른 꽃들이 몇 송이 피어있고 마른 땅에 물을 대기위해 스프링클러가 부지런히 돈다.
대략 5시간쯤 기다렸을까. 출국 수속을 할 모양이다. 무심한 얼굴의 사내가 한참 여권 여기저기를 넘겨보더니 쾅, 하고 육로 비자 도장을 찍는다. 마치 염라대왕이 생사여탈권이라도 결정하는 것처럼 그 표정이 우러러 보인다.
그리고 2, 30여분 달렸을까. 땅 위를 가로지르는 철망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기차가 선다. 제복을 입은 전형적인 러시아풍의 풍만한 몸매의 아주머니가 올라와 여권을 다 걷어가고, 이어 젊은 군인들이 올라와 거칠게 짐을 검사한다. 아니 뒤진다. 배낭, 커다란 트렁크를 샅샅이 뒤지고 고장 난 카메라 사진을 봐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중앙아시아의 경찰이나 관리들의 부패가 심하다는 말은 여러 정보를 통해 들었지만, 불친절하기까지 하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경찰은 가능한 안 만나는 것이 좋다고 했는 모양이다. 휴대폰 사진까지 다 검사하고 나더니 자기들끼리 희희덕거리면 다음 칸으로 간다. 침대칸 손님이래야 고작 6명인데.
직업의 선택도 참 중요할 것 같다. 자기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가 한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사막을 내달리는 기찻길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새들과 구름만이 국경을 넘나들며 인간의 땅의 대한 욕심을 조롱하는 듯하다. 미명(微明) 아래 갇히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가끔 조그만 도시들을 지날 때에만 잠깐씩 푸른빛이 보인다.
낯설은 중앙아시아
그렇게 또 2시간여 기다렸을까, 마침내 6시 55분쯤 덜컥거리며 기차는 카자흐스탄 검문소를 출발한다. 첫 번째 역인 <알틴콜Altyncol>에서 7시 30분에 도착해 20분 정도 쉰다. 몇 명의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벤치에는 중앙아시아의 청년과 아가씨들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리운 이와 통화를 한다.
8시가 되어도 창문을 통해 침대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햇볕의 끝이 아직 뜨겁다. 나는 그 빛을 피해 더욱 창 쪽 깊숙이 앉아 보이차를 마시며 여행서를 읽는다. 이 차는 둔황에서 우연히 만나 친절한 중국인 아가씨 <도우 도우>가 주고 간 것이다. 자상한 그 녀는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날 슈퍼에 가서 먹거리를 한 보따리 사 안겨 주고 떠났다. 나는 두고두고 그 녀가 주고 간 것들을 아껴 먹으며 간간히 그녀를 추억한다. 오래 전부터 왼쪽으로 설산이 나타나 몇 시간째 따라온다. 마치 한 선으로 길게 붙어있는 것처럼.
아뿔싸, 내릴 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주머니에는 카자흐스탄 돈 한 푼도 없고 중국 돈만 만 원 조금 넘게 남아있다. 호텔 예약도 하지 않고 떠났다. 인터넷 되는 곳이 없으니 여태 하지 못했다. 옆 칸에 서양인 커플 4명이 앉아있는데, 무얼 좀 물어봐도 "I dont know"만 연발하며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부랴부랴 반대편 쪽 칸에 있던 좀 친절하게 보이던 중국인에게 호텔 위치와 ATM에 대해서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간신히 부탁했다. 어스름이 완전히 내린 9시 30분쯤, 태어나 처음 발을 내딛은 낯선 국토 알마티Almaty. 그러나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대지, 그 땅의 향기가 훅, 코끝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