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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Sep 02. 2020

누구와 함께 읽을 것인가

멤버에 관해 #1

먼저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책을 함께 읽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을까. 그들의 평소 취향과 적극성, 물리적인 거리 등 이런저런 것들을 기억해본다.


동네 지인들은 어떨까, 아무래도 접근이 쉬우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평소 늘 책을 읽으며 카운터 뒤에 앉아 계신 집 근처 카페 주인께 제안을 하니, 시간을 따로 내는 것도 고단한 일이고 모임에 속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라며 정중하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근에 워크숍을 통해 독립출판을 펴낸 친구의 딸이자 큰애 친구에게도 의사를 물어봤다. 직장일로 야근이 잦아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책을 좋아하는 개성이 강한 친구들을 몇몇 떠올렸지만 그들도 카페 주인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지 않을까라고 지레짐작해서 물어보기를 포기해버렸다. 급기야 가족들까지 고려해봤지만 비관적인 전망만 그려질 뿐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곧 해외로 장기출장을 떠날 계획인 딸이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스토리에 올려보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어쩌면 관심을 가질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두 명이 바로 지원을 했다. 딸이 전혀 알지 못하는 팔로워들이었다. 그 둘과 매개가 된 딸이 첫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카톡 단체 채팅방을 열어 멤버들을 초대하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 딸의 대학 후배 한 명이 더 합류해서 총 다섯 명의 멤버가 꾸려졌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아니 이상적인 인원수이다. 식탁에 딱 맞게 둘러앉을 수도 있고 대화가 산만하게 진행되지 않을 만한 적정인원이다.


디데이를 잡고 진행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들뜬 마음이었는데, 막상 그날이 되어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비관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비관의 원인은 세대 차이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이 90년대 생들이고 나는 60년대 생, 무려 30년의 갭이 있다. 나이가 무슨 대수냐 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가끔 나를 바라보는 20대 딸들의 뜨악한 표정이랄지, 두 번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그들의 차가움이랄지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를 자꾸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들의 재기 발랄하고 명민한 사고와 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의기소침해졌다. 


지나친 기우였다. 평상시 최악을 상상하며 닥친 현실을 감당할 대비를 하던 방법이 통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분모가 어색함을 곧 사라지게 했고,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기분 좋은 들뜸과 나직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맑은 웃음소리와 예의 바른 경청으로 두 시간이 채워졌다. 


그날 밤, 모든 우려가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 후 벅찬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 이불깃을 꼭 쥔 채 천장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잊고 있었던 감정이었다. 뿌듯함일까, 설렘일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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