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클럽이라서 좋은 이유 #1
다들 바쁘다.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 중이거나 실행 중이거나, 밥벌이를 하느라 혹은 누군가를 만나느라. 그 와중에 운동도 해야 하고 여행도 떠나고 싶다. 머릿속도 어지럽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계 때문에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일 때도 더러 있다. 거기에 심란하기 짝이 없는 포털 뉴스들까지 더해진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집중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지뢰처럼 매복되어 있기도 해서 책을 다 읽지 못한 채로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책을 다 읽지 못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하게 하는 ‘이끌림’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적당한 거리두기’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사무치게 다가온다. 자식이니까, 부모이니까, 형제이니까, 파트너이니까, 친구이니까, 등등 온갖 역할이 거리두기를 방해하는 허들이 되는데 주로 이해관계에서 그것이 더 교묘하게 이용되면서 나를 도덕적으로 속박하고 상대방도 속박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책’이라는 목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수다가 옆길로 새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책’과 연관되지 않는 개인사에 대해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도 형성되어 있다. 오히려 모임의 횟수가 더해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가는 기분 좋은 ‘느슨한 연대’가 만들어진다.
목표 지향적이지 않다는 점도 매력이 될 수 있다. ‘몇 주 안에 000 읽기’는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도전이다. 혼자서 읽어내기 어려운 ‘교양 필독 인문학서’가 모임에서는 가능하고, 그게 모임의 장점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 읽기의 목표보다는 즐거움에 더 방점을 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 교양필독서는 누가 정한 것이 길래, 그들에게는 교양이 될지언정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 몰래 다른 책을 읽었던 그 순간의 짜릿함을 조금이라도 소환하고 싶었다.
독후활동에 대한 부담이 적은 점도 좋다. 학교에서 내준 독후감 과제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 무관한 ‘필독서’를 읽고 독후감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들을 갖춘 정형화된 글쓰기를 요구했다. ‘원고지 몇 글자 이상’이 주는 부담감이란. 먹기도 전에 체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은 독후활동에 대한 거부감만 들게 했을 뿐이다.
내 취향과 맞지 않아서 혹은 어려워서 읽느라 애를 먹었어도 책 한 권 안에는 이야깃거리가 얼마든지 있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해석에 감탄하기도 하고 내 의견에 누군가가 맞장구를 치면 신나서 목소리가 한껏 올라가기도 한다. 미처 몰랐던 것을 각자의 다양한 생각이 버무려져서 깨닫게 되는 순간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혼자 읽었다면 어쩌면 다다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곳까지 함께라서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책은 늘 일상 속 가까운 곳에 놓여 있지만,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비일상적인 일이다. 비일상적인 행위는 내 빡빡한 일상 속 어딘가에 낯선 공기와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내가 잠시 멈출 수 있게, 코앞만 보고 있던 내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릴 수 있게.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