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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n 17. 2024

빨간 점이라도 찍어야 하는 이유

신출내기의 기억

              

  검정 바지에 검정 재킷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왜 이렇게 생기가 없어 보이는 거지? 화장을 안 한 탓일까? 화장이야 원래 안 하는 편이지만 초췌해 보이는 건 처음 느껴본다. 해맑지 않은 표정에 짙은 음영까지 드리운 얼굴. 여기에 검은색을 덧입히니 우울해 보일 수밖에. 고집도 세어 보이고 왠지 초라해 보이는 게 별로다. 브로치를 골라 가슴에 달아본다. 생기를 돋우기에 크게 도움은 못 돼도 기분은 한결 나아지는 듯하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화려한 색 옷은 거의 입지 않았다. 매일 문상이라도 갈 듯 주야장천 검정만 고집했다. 가끔 변화를 시도해 본다는 게 고작 잿빛을 곁들이는 정도였다. 젊은 애가 왜 맨날 거무죽죽한 옷만 입냐고 성화를 대던 엄마도 결국은 못 말렸다. 제발 화사하게 입고 다니라는 말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같은 색만 사들였으니까. 어느 매장을 들어가든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모두 어두운 색인 걸 어떡하냐고. 무엇보다 맑고 통통한 얼굴에 검정 옷은 깔끔하게 어울렸고, 꾸미지 않아도 도도한 느낌이 좋아 마음껏 즐겼다.


무채색으로 중무장한 옷장 속에 하나둘 빨간색 옷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이다. 노년이 되면 원색을 좋아한다더니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채색 옷은 싫다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원색의 옷을 입고 나서 흡족한 표정을 짓는 엄마처럼.


빨간 재킷을 꺼내 갈아입고 다시 앞뒤를 돌아본다. 색깔 하나 바꿨을 뿐인데 생기가 돌면서 화사함까지 내뿜으니 급반전이다. '빨강'을 대니 첫 발령지에서 있었던 일이 어찌 생각나지 않랴. 바로 엊그제 같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그때의 그 기억을.


나는 40여 년 전에 서울 변두리의 작은 학교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꿈을 이뤘다는 즐거움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신났고,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선배들이 있어 든든했다. 어른들 눈에 들게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 깍듯하게 잘하라는 부모님의 당부를 그대로 따랐다. 햇병아리 눈에는 선배들 모두가 까마득히 올려다보여 자연스레 공경심이 우러나왔다. 특히 정년퇴직을 몇 달 앞둔 홍 선생이라는 여자분한테는 부모를 대하듯 지극정성을 다했다. 신출내기는 학교에 활력을 주는 인물로 삽시간에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를 보는 홍 선생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평소 딸처럼 대해주던 분이라 나를 향한 눈빛이라고는 꿈엔들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사람과는 아무렇지 않게 담소를 나누다가도 나한테만은 말을 뚝 끊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는데 일방적인 외면이라니, 말로 표현 못할 큰 아픔이었다. 구름 위를 걷듯 가볍던 출근길이 천근만근 무쇠 덩이라도 매달은 듯 무거워졌다.


왕방울만 한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댈 때면 내 가슴은 산산이 부서 파편 조각으로 날아갔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표현을 써도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말로 실수한 걸까, 아니면 거슬린 행동을 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잘못은커녕 잘한 일만 떠올랐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도무지 잘못한 것을 찾아낼 도리가 없었다. 불같은 성품이라 교내에서 그분의 신경을 건드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애간장만 더욱 타들어 갔다.


새싹처럼 파릇파릇하던 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나는 제발 이유나 좀 알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인정사정없이 단칼에 투명인간 취급을 해버리니 무슨 수로 마음을 돌릴지 막막했다.

“무슨 오해가 있으면 푸셔야지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숙이며 애면글면 빌었다. 매일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드디어 효험이 나타났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

반응해 준 것은 감지덕지했으나 무슨 뜻인지를 몰라 “네?”라고 반문했다.

”빨간 옷 입고 왔다고 했잖아."


출근길에 빨간 정장 차림의 그분을 만난 열흘 전, 반가움에 인사보다 감탄사가 먼저 튀어나온 그날 아침이 생생했다.

“어머나, 빨간 옷 입으셨네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낼 정도로 냉정하게 변한 이유가 고작 이거였다고? 그간의 끈끈한 관계를 보더라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오해가 아닌가. 더군다나 분명히 “너무너무 예쁘세요”라고 강조했는데 이 대목에서는 듣지 못했던 거다. 어깨에 힘이 쭉 빠질 정도로 허탈했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65세, 자글한 주름살을 파운데이션으로 두텁게 가리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던 그녀이다. 소심해지려는 심신을 빨강으로 치장하여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출근하던 길에 맞닥뜨린 새파란 새내기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빨간'은 이미 겸연쩍던 마음에 불을 지폈던 듯싶다. 나는 순식간에 자존심을 건드린 괘씸한 신출내기로 몰다. 오해는 당연히 풀렸어도 허물없이 지내던 처음으로 온전히 돌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40년 전의 홍선생의 처지가 되었다. 젊음이 저만치 가며 손을 흔든다. 이별의 징표로 얼굴에는 잔주름을, 마음에는 소심함을 남긴 채. 그동안 잘 어울리던 검정 옷들이 이제는 어색해 보인다. 나이 들수록 오색찬란한 옷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색은 청춘의 생기를 조금이나마 되찾겠다는 노년의 심리를 아주 잘 이해해 주는 색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밝은 오늘, 누군가 내 얕은꾀를 알아봐 주면 좋을 날이다. 옷차림에 관심을 보이며 아는 척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지. 어떤 말을 듣든지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어머나, 빨간 옷 입으셨네요."

네, 저는 빨간 점이라도 찍어야 좋은 일이 생기거든요, 하고 반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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