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선 이들이 다 잘되었으면
나는 사람이 많은 거리에 서면 꼭 두리번거리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매서가 아니다. 대단한 보물을 찾으려는 눈빛도 아니다. 그저 내 앞으로 다가오는 작은 종이 한 장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스치듯 짧은 마주침에도 누군가를 향해 작은 호의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시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저녁 찬거리와 과일, 제철 맞은 굴과 매생이로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바구니를 마주 잡고 걸었다. 저만치 지하철역 입구, 사람들의 발길이 교차하는 길목에 뭔가를 내밀고 있는 손이 보였다. 허리가 구부정한 아주머니가 길 오른편에 서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오른손에 들렸던 장바구니를 재빨리 왼손으로 옮겨 쥐며 남편과 자리를 바꿨다. 오른손을 자유롭게 뻗기 위해서였다.
내 앞으로 곧장 걷던 한 남자가 전단지 든 손을 보자 대각선 방향으로 종종걸음 치며 멀어져 갔다. 바삐 가야 할 앞길에 방해꾼이 나타났다고 생각한 걸까. 거절당한 전단지가 허공을 맴돌다가 뒤따라오던 젊은이에게로 옮겨졌다.
‘저 젊은이는 과연 종이를 받아줄까.’
나는 내 일도 아니면서 괜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젊은이는 전단지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는 쏜살같이 지하도 아래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몇 걸음을 못 가서 나는 아주머니 앞에 멈춰 섰다. 전단지를 건네려는 아주머니의 손보다, 그것을 받으려는 내 손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전단지를 받고 옆에 선 남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남편도 한 장 주셔야죠."
뜻밖이라는 듯 무표정했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금세 발그레해졌다. 아주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남편에게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외면하듯 스쳐 가는 이들 틈에서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을 몇이나 만나봤을까. 고마움이 섞인 듯한 아주머니의 눈빛과 내 눈빛이 마주쳤다.
내가 이토록 전단지 받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건 아들의 아픈 기억이 서려 있어서다. 몇 년 전, 아들이 취직하기 전의 일이다. 아들은 영어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그 학원의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자처했다.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홍대 앞 거리 한복판에 선 아들은 낯선 시선들과 홀로 마주했다. 종이 한 장 건네는 가벼운 일은 생각보다 천근만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선 첫날, 아들은 돌아와 식탁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했다고 했다. 전단지를 뿌리치고 가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는 심정이 얼마나 민망하고 막막했을까.
하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관심 없는 이들의 마음을 단 1초라도 붙잡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입가에 웃는 표정을 만들고, 싹싹한 인사말을 건네는 법을 익혔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에게는 아이의 신발이나 가방을 칭찬하며 다가가는 묘수도 찾아냈다. 그 일을 마치고 얻은 건 돈 벌기가 어렵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무슨 수를 써봐도 끝내 외면하는 사람들은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아들과 나눈 씁쓸했던 아르바이트 추억 한 토막에서 나는 굳게 다짐했다. 길 위에서 나눠주는 건 무엇이든 기꺼이 받겠노라고. 그날 이후 내 눈에 비치는 거리의 아주머니는 내 엄마 같고, 젊은 아르바이트생은 내 아들로 보였다. 양손에 짐을 들었어도 상관없었다. 한쪽으로 몰아 들면 손 하나쯤 얼마든지 비울 수 있었으니까. 때로는 왔던 길에서 다시 마주치더라도 모른 척 한 장을 더 받는 열정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전단지를 피하려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시간을 아끼려는 마음이야 이해한다지만, 사실 그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하다. 요리조리 피하려는 발걸음보다, 손 한번 쓱 내미는 게 오히려 빠를 텐데. 어차피 쓰레기통으로 갈 텐데 뭣 하러 받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활용 통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한들 어떠랴. 내가 받아온 그 종이 한 장이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그분들을 조금 더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전단지를 받는 일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뒷사람을 기다려 주는 선행보다 손쉽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보다 훨씬 단순하다. 혹한에 떠는 이에게는 난로가 되어 주고,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는 이에게는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이웃의 고단함을 나눌 수 있는데 굳이 인색할 이유는 없다. 종이 한 장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서로 잇는다면 세상은 더 훈훈해질 수 있으니까.
요즘 들어 전단지를 나눠주는 이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길목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현실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폐업과 창업이 교차하는 골목의 풍경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숨짓고 눈물 흘릴까, 짐작하니 장바구니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단지를 펼쳐보았다. 헬스장 개업 기념으로 할인한다는 광고 속 한 젊은이가 근육을 자랑한다. 기력이 쇠해지고 근육이 빠져가는 우리 노년기에 필요한 정보가 아닌가. 더군다나 엎드리면 코 닿을 장소에 생겼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쓰레기에 불과했던 전단지 한 장이 이번에는 유용하게 쓰일지도 몰라서 잘 챙겨두었다.
앞만 보며 묵묵히 전단지를 돌리던 아들의 뒷모습을 떠올릴 때면 더욱 간절해지는 바람이 있다. 길 위에 선 분들이 모두 잘되었으면. 새로 문을 연 가게들이 번창하고, 그곳을 알리는 이들의 발걸음이 어제보다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두리번거렸다. 혹시 전단지 나눠주는 분들이 또 어디 계시지나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