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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l 17. 2023

유품, 당시집을 펼치며

당시집(唐詩集)-(칠언고시(五言古詩), 오언고시(七言古詩)

 

 

  책장을 정리하다 누렇게 바랜 책을 다섯 권이나 찾아냈다. 조심스레 꺼내보니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라 쓰인 당시집(唐詩集)이다. 외증조할아버지는 이 책을 생전에 즐겨 읽으셨다. 얼룩덜룩 빛바랜 표지를 들춰보니 어릴 적 고향 사랑채에서 맡던 냄새가 방안 가득 와르르 쏟아진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매캐한 향내를 풍기며 콧속으로 폴폴 들어온다. 

  

외증조할아버지는 한시(漢詩)를 읊으며 아침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시낭독을 들으며 식구들도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사랑채 툇마루에 걸터앉아 뜻 모를 시에 바짝 귀 기울이며 규칙적인 운율에 몸을 맡겼다. 가끔 시조창도 구성지게 잘하여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했다. 화롯가에 긴 담뱃대를 탕탕 두드리던 묵직한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외증조할아버지는 한의사로서 아주 특별한 의술을 가진 분이다. 급체하여 숨넘어가는 사람을 굵은 대침 한 방으로 살려냈다. 독사에 물려 새파랗게 죽어가는 사람도 침을 놓고, 한약을 먹여 핏기를 돌게 했다. 치료를 받고 돌아간 사람들은 술이나이나 과일을 가지고 할아버지께 다시 인사 오는 일이 제법 많았다. 간혹 치료 시기가 긴 사람도 있었는데 되돌려 보내지 않고 거처할 방과 끼니를 제공했다. 의술(醫術)과 인술(仁術)을 두루 겸비했다는 소문이 동리밖까지 자자했던 까닭에 사랑채에는 약을 짓거나 침을 맞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의술이야 동의보감의 허준에 비길 바 아닐지라도 인술을 펼치는 자세만큼은 일맥상통하리라.


또한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천자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꾀를 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벽장 깊숙한 곳에서 눈깔사탕을 꺼내주었고, 어떤 날은 놋주발에 담긴 따끈한 약식을 주기도 했다. 천자책을 떼고 책거리를 하는 날, 엄마들은 술과 고기를 대접했고, 우리들한테는 팥시루떡을 주었다. 행여나 고물이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떡을 먹으며 깔깔대던 어린 시절이 눈에 선하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상투는 보는 이마다 저절로 깍듯한 예를 갖추게 했다. 가끔 망건을 벗고 머리를 감을 때면 여자처럼 길게 늘어지는 머리채가 신기하기만 했다.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하며 상투를 틀어 올릴 때마다 옆에서 망건을 붙잡아드리는 일은 뿌듯했다. 동네 아저씨로부터 할아버지의 상투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단발령이 일어나던 해, 마당으로 들이닥친 일본군을 불호령으로 내쫓았단다. 나타날 적마다 매번 무섭게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다니 상투는 일본군한테도 위엄을 주는 상징이었나 보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양반의 체통을 꼿꼿하게 유지했던 분이다. 또한 아무리 바빠도 뛰지 않는다는 양반의 철칙을 그대로 지켰다. 여름에도 바른 의관을 갖추고 한결같은 낯빛으로 군자의 도리에 대해 말씀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도(正道)를 걸어라."


아흔을 훌쩍 넘기고도 오로지 책 읽기에만 정진했고, 간간이 약장을 정리하고 골패를 두며 소일했던 증조할아버지. 하지만 세월의 섭리를 누가 거역하겠는가. 언제까지나 선비정신을 지키며 꼿꼿하게 책만 읽으실 같던 분한테도 혹독한 노환이 찾아왔다. 노환은 들길에 홀로 선 연약한 노송한테 불어닥친 매서운 바람이었다. 담장을 넘기던 쩌렁쩌랑한 시낭독 소리도 자연히 잦아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기억력이 떨어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만 볼 뿐, 손은 쓰지 못했다. 무엇을 찾기 위해 안타까움에 목이 멘 가족들을 뒤로 한채 총총걸음으로 떠나셨을까.


그분이 꽃상여를 타고 먼 길 가던 날, 황금들녘은 숨을 죽이고 허수아비는 논마다 서성댔다. 커다란 소나무 밑 양지바른 자리에 하관을 하고 내려오는데 그 맑던 하늘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요란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길 가는 거라며 생전에 그렇게 후덕했으니 당연하다며 한 마디씩 했다.


사랑채에서 수십 년을 동고동락하던 유품들이 대청마루 위로 쏟아져 나왔다. 밤늦도록 불 밝히던 등잔과 조그만 놋요강, 자수가 놓인 병풍과 겨울밤 온기를 돌게 하던 화로가 방황하는 기색으로 나뒹굴었다. 때 묻은 약장, 닳아빠진 골패갑과 담뱃대가 다시 못 올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친지들이 골동품이다 장식품이다 하여 다 챙겨가고 난 뒤, 무심하게 책 더미를 떠들어봤다. 책 무덤 맨 밑바닥에 당시집이 깔려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학 하는 분의 기상이 담긴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넣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할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책갈피 사이에서 종잇장 하나가 힘없이 떨어졌다. 누런 화선지 쪼가리에 '강촌'이라는 제목이 뚜렷하다. 

다병소수유약물(多病所須唯藥物) / 미구차외갱하구(微軀此外更何求)

 <병이 많은 몸에 필요한 것은 오직 약물뿐,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랄까.> 

수많은 시 가운데 병든 몸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약물뿐이라고 역설한 시성 두보의 시를 필사해 둔 것을 이제야 보게 되다니. 가난으로 점철된 인생의 끄트머리까지도 병으로 온갖 고충을 겪었던 두보의 심정을 어느 누구보다 이해했을 할아버지다. 두보와 다름없이 지독한 고독과 아픔을 참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가족 중 어느 누가 눈치챘을까.


쉰을 갓 넘겨 부인을 잃은 뒤, 홀아비로 사십여 년을 보내면서 손에서 놓지 않았던 당시집은 아픔을 삭이기 위한 유일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시성(詩聖) 두보가 곁을 지켜주었으니 그나마 조금 덜 외로웠을 지도.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숙연해진 마음에 멍하니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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