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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l 25. 2023

사라진 아리랑 고개

마음속 영원한 아리랑 고개


  산수리(山水里)는 내가 태어난 서산의 한 작은 마을이다. 산 좋고 물 맑아 붙여진 이름이다. 널따란 호수를 품은 내 고향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개 하나를 넘어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아리랑 고개’라 불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눈부신 햇살 아래 별빛으로 수놓은 듯한 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고갯길은 장에 갔다 오는 어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어주었다.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따 먹으며 고개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여름이면 울창한 숲에 들어가 은은하게 퍼지는 솔향을 맡았다.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산수리. 엄마는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댁에 나를 데려다 놓기 바빴다. 잠깐이나마 식구 수를 줄이려는 부모님의 고민은 알지 못한 채 마냥 좋기만 했다. 어린 시절 뛰놀던 초록 풀밭과 밤하늘에 떠 있는 총총한 별들이 가슴에 그리움을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잠결에도 할머니의 자장가가 들려오는 듯 언제나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이 돌아왔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할머니가 안 계셨다. 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뒤란도 가보고, 담장 옆에서 노란 꽃을 달고 있는 호박밭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뒷동산으로, 우물가로 달려가 사방을 둘러봐도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리 신작로 위를 터덜거리며 달려오는 완행버스가 보였다. 혹시나 해서 논두렁 위로 성큼 달려가 보았지만 버스는 뽀얀 먼지만 남기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나는 금세 풀이 죽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쉬엄쉬엄 넘어가던 그 고갯길을 버스가 뛰뚱거리며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버스 뒤꽁무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장날이 되면 으레 장롱 속에서 고운 한복을 꺼내 입으셨다. 그리고 독 안에 든 쌀이나 콩을 자루에 퍼 담아 머리에 이었다. 그것들을 돈으로 바꾸어 내게 예쁜 치마나 맛난 팥죽을 사 주셨다.

  ‘오늘은 장날도 아닌데 대체 어디를 가셨을까?’

  힘이 쭉 빠진 발걸음이 어느새 호숫가로 나를 이끌었다. 떠오르는 햇살에 비친 황금 물빛이 눈부셔 잠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가 멀리 사라졌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호숫가에 흩어진 조약돌을 집어 들었다. 만지작거리다가 잔잔한 호수에 냅다 던졌다. ‘퐁’ 소리에 놀란 호수가 여러 겹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수면을 열었다. 물 위로 할머니의 얼굴이 비쳤다가 사라지고 또 비쳤을 때 조급한 목소리로 불러댔다.

 

 “할머니가, 할머니이.”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고요한 아침 공기를 가르던 내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호수 위로 둥둥 떠올랐을 뿐.

  얼마 뒤 멀리 아리랑 고개 끝자락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멀리서도 단박에 할머니라는 걸 알아챈 나는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신작로를 냅다 뛰기 시작했다. 장날마다 고운 옷을 꺼내 입던 할머니. 오늘은 평상시처럼 검은 광목 치마에 무명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할머니 얼굴에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혀 연신 흘러내렸다.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 머리 위에 올라앉은 커다란 보퉁이가 갑자기 꿈적거렸다. 버둥거리는 꽃게들이 보퉁이 사이로 비죽비죽 집게발을 내밀었다.

  “할머니, 꽃게 사러 장에 갔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꽃게를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일부러 새벽부터 장에 다녀오시다니. 20리가 넘는 자갈길을 흰 고무신 바람으로 바삐 걸었을 할머니가 안쓰러워 광목치마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늘은 장날도 아닌데 무엇으로 꽃게와 바꾸었을까?’

  할머니는 빨갛게 익은 게를 발라 통통한 살만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낼름낼름 맛있게 받아먹은 게살은 다름 아닌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다음 날 서울로 떠나보내야 하는 할머니 가슴에는 얼마나 아쉬움이 가득했을까.

  여름 끝자락 무렵, 푸른 하늘은 맑은 아침을 열어주었다. 소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논두렁길을 지나 신작로까지 걸어 나왔다. 소담지게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하늘 한복판을 새하얗게 채색하는 중이었다. 미루나무 가지에 줄 맞춰 앉은 참새들이 쉬지 않고 이별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물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부릉부릉 찻소리와 함께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완행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림과 동시에 울컥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왠지 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 다시는 할머니를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 눈에도 글썽글썽 눈물이 고였다. 버스가 고개를 꼴깍 넘어갈 때까지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서 손만 흔들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리랑 고개는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했다.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손 흔들던 곳, 자식들 하나둘 도시로 떠나보낼 때 눈물 뿌리던 곳도 그 자리였다. 그뿐이랴. 떠난 사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바라보던 곳, 이제나 저제나 자식들이 성큼성큼 걸어올까 대문간에 기대어 바라보던 곳도 그 고개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고갯길로 할머니의 꽃상여도 함께 넘어갈 줄이야.

 


  

  얼마 전, 아리랑 고개에 도시화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거대한 산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면 할머니의 애환도 아무런 흔적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테다.   

  숨을 죽이며 가만히 흐느낀다. 내 마음속 영원한 아리랑 고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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