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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22. 2023

평생 나의 벗

중년을 넘어선 만남

     

  책방을 향해 가는 내 앞으로 뒷모습이 예쁜 한 여자가 걸어간다. 잘록한 허리, 길쭉한 다리에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세련된 모습이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배낭을 멘 차림으로 보아서는 대학생인 듯싶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서 힐끗 옆을 보는 순간, 아뿔싸! 좀 전의 여대생은 어디 가고 중년의 여인네 서 있나. 화장기 없는 얼굴 위로 잔주름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 여인도 아마 나처럼 병을 앓고 있나 보다.


세상에 옷 사기를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으랴만 나는 옷 사기를 주저한다. 부인복 코너와 숙녀복 코너의 양 갈래에서 고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숙녀복 코너의 세련된 옷이 눈에 들어오지만 나이가 받쳐주질 못하니 들어설 용기가 없다. 몸매로 봐서는 부인복 코너의 옷이 제격이지만 두루뭉술하고 노티가 나서 머뭇거리다가 외면하곤 한다.


옆에서 측은하게 보고 있던 남편이 말 한마디로 가시를 박는다.

“옷은 그 사람의 교양과 지적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만큼 나이에 맞게 입어야지.”

일침을 가하는 남편도 언행일치는 안 되는 사람이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이유로 푸른색 와이셔츠를 즐겨 입기는 매한가지다.


병의 증세는 미용실에서도 발동하여 의자에 앉자마자 자동으로 주문을 한다.

“어려 보이게 해 주세요.”

미용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내 눈가에 있는 잔주름을 뚫어지게 본다든가, 흰 머리칼이 섞인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본다. 싹둑싹둑 리듬을 타고 떨어지는 머리칼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시 한번 ‘어리게’를 애원해 보지만 이번에는 웃기만 한다. 손님의 나이 타령에 아랑곳하지 않는 미용사의 뚝심에 공연히 섭섭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엄마는 ‘할머니’라 부르는 소리는 아예 못 들은 체하면서 자리를 뜬다. 언제 봐도 열여덟 소녀 시절을 회상하듯 촉촉하게 젖어있는 눈빛인데 할머니라니. 머리에는 이미 한겨울 포근한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아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할머니 자태인데 인정하기 싫은 눈치다.


그 엄마의 그 딸이 아닐까. 시장 모퉁이에서 찬거리를 사 들고 돌아서는데 아줌마를 외쳐대며 거스름돈을 받아가라는 아저씨의 말을 못 듣는다. 내 갈 길 가기에만 바쁘니 겉모습은 물론이요, 건망증까지 심한 아줌마가 틀림없다. 하지만 아줌마라는 말은 아직도 강 건너 불처럼 아득히 멀리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과 함께 봄나들이 갔던 사진을 돌려볼 때였다. 가족사진을 보던 아버지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왜 이렇게 늙었냐?”

사진 속 아버지는 샛노란 튤립 꽃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 가득 주름 잡힌 그 웃음이 왜 그리 서글퍼 보이던지 가슴이 텅 빈 듯했다.

‘윤기 나던 검은 머리에 하나둘 눈발이 날리더니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셨구나.’

조용히 한숨을 모으는데 갑자기 나를 위로해 주시는 게 아닌가.

“직장 다니랴, 살림하며 애들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면 얼굴이 이렇더냐?”

아버지도 늙어가는 모습은 애써 지우고 젊음만 꿈꾸고 있었던 거다.


가끔 커다란 자식을 둔 엄마가 처녀처럼 치장하고, 지긋한 중년의 아버지가 젊은이처럼 행세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젊음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몸짓이다. 세월이 가면 강산이 변하는 게 당연지사요,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애써 늙을 필요는 없으나 나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나이보다 조금이라도 젊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일단 그 병에 걸리면 달리 치료할 길도 없고, 좀처럼 낫지도 않으니 불치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게 아닌가 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젊음의 물결로 출렁대는 대학가를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고 발꿈치에 힘을 잔뜩 주지를 않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축 처진 어깨를 추켜세우려고 진땀을 흘리지 않나. 열적은 마음은 공연히 허둥대기 일쑤다. 걸어온 길이 아쉬워 뒤돌아보면 하늘 가득 꽃송이들이 폴폴 날린다. 그 모습이 하도 눈부셔 한참 서서 멍하니 쳐다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책방에 도착하였다. 책장을 돌며 여러 가지 책을 들추다가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책을 꺼내보았다. 수필로 이름이 난 몇 편의 글은 읽어봤지만 새삼스레 다시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아, 책 속에는 뜻하지 않게도 병을 치료할 묘책이 적힌 문장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동안 힘겹게 짊어지고 다니던 나의 병이 글 한 줄로 말끔히 치료될 수 있다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막혔던 숨통이 트이면서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불치병으로만 알고 쉬쉬하던 젊음에 대한 갈증이 일순간에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필은 청춘의 나이로 쓰는 글이 아니요,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가슴 뭉클한 말이더냐.

 

젊은 날에 흩날리던 꽃송이만큼이나 중년의 길목에도 아름다운 의미를 새겨놓을 수 있으니 무엇이 고민이랴. 청춘은 갔으되 수필을 쓸 수 있는 시기를 만났으니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이제 수필을 경작할 수 있는 자그마한 자격증 하나 얻었으니 터를 마련하여 땀 흘려 가꿔나가야겠다. 그 기름진 터에서 언젠가는 싹이 트고, 꽃이 피어 튼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청춘의 피 끓는 감정이 아닌 중년 고개를 넘어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만난 수필, 평생 나의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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