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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28. 2023

다시 타오르는 아궁이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       

  단풍 구경 가는 길에 외암리 민속 마을에 잠깐 들를 시간이 있었다. 오래된 초가집이 몇 채 보이는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잠시 고향 풍경이 그려졌다.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을 열고 마당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어젖힌 부엌은 귀퉁이에 잔뜩 땔감을 쌓아두던 외할머니댁과 구조가 비슷했다. 가지런히 올려진 장작과 수북하게 쌓여있는 가랑잎 무더기가 친근해 보였다. 뒷산으로 올라가 썩은 나무뿌리를 발로 걷어차면서 땔감을 마련했던 어릴 적 기억이 났다. 픽픽 쓰러지는 나무뿌리가 삼태기에 가득 채워지면 장한 마음에 의기양양해서 할머니를 불렀다.


황톳빛 너른 부뚜막이 낯선 손님을 반긴다. 텅 빈 아궁이도 입을 한껏 벌리고 금방이라도 시뻘건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 같다. 냇가에서 잡아 온 가재로 빨간 통구이를 해 먹던 여름 이야기가 그 안에 있고, 고구마를 구워 먹던 겨울의 그리움이 숨어있다. 아궁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길을 따라 시선을 멈추면 왠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외가 근처에는 시부모께 봉양 잘하기로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한 아주머니가 살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그 집으로 마실 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나를 무척 귀여워했다. 도와주는 이 없이 부엌일을 하느라 종종거릴 때,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 때는 일을 도왔다. 생솔가지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는 자꾸 눈물을 만들어냈다. 아주머니는 광목 행주치마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집안의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나갔다. 


몇 해 전, 외할머니의 산소에 성묘 갔다가 아주머니댁에 잠깐 들렀다. 그날도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던 아주머니는 뛰다시피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자리를 잡고, 내외분만 할머니와 고향을 지킨다고 했다. 찐 감자를 내놓는 아주머니의 마른 얼굴에는 뭔지 모를 수심이 가득했다. 


아쉬움으로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저씨는 간에 이상이 생기고,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 감옥에 갔고, 둘째는 가정불화가 계속되어 이혼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셋째 아들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착하디 착하게만 살아온 아주머니한테 어찌 이리도 혹독한 시련이 닥쳤을까.


올 추석에 다시 한번 고향에 들렀는데 아주머니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라 몰라볼 정도였다. 병마와 싸우는 아저씨의 흙빛 얼굴은 가난이 이렇게 모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불을 땐 지 오래된 듯한 시커먼 아궁이만 굳건하게 부엌을 지킬 뿐이었다.      


선조 대에는 동네 땅을 거의 다 가진 천석꾼의 집안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을까.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 집안의 바로 윗대 조상을 탓했다. 아주머니의 시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하는 유별난 사람이라 했다. 멀쩡한 남의 땅도 억지를 부려 가로채기 일쑤였고, 가난한 동리 사람의 쌀을 빼앗을 궁리만 했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하다못해 머슴의 새경도 떼어먹을 정도이니 후대가 잘 될 수 있겠냐면서 수군거렸다. 자기네 보리쌀 한 톨을 먹었다고 남의 집 귀한 닭 모가지를 비틀어 죽인 사건은 두고두고 마을에 회자했다. 죽은 닭을 똥통에 빠뜨린 후 모른 체 시치미까지 뗀 걸 보면 놀부 심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간암으로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남에게 덕을 쌓고 베풀어야 자식 대에 가서 잘 되는 법인데.”

자식 대까지 걱정하는 엄마한테 나는 반기를 들 듯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식 걱정은 말고, 엄마 당대에서나 잘 사세요.”

엄마가 읊는 명심보감 한 구절이 철딱서니 없이 뱉어낸 내 말끄트머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終身行善(종신행선)이라도 善猶不足(선유부족)이요, 

 一日行惡(일일행악)이라도 惡自有餘(악자유여) 니라.”

‘죽을 때까지 선행해도 오히려 선은 부족하지만, 하루 악을 행하더라도 악은 남는다.’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나온 ‘인과응보’라는 말처럼 지은 대로 갚는다고 하지만 조상이 지은 업보를 후손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게 아닌가.


그나마 있던 밭뙈기 하나 지키지 못하고, 초가집마저 남의 손으로 넘어갈 때 아주머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 작은 몸 하나 의지할 곳 없어, 늙은 시어머니 모시고 절간으로 들어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절간으로 들어갔다는 소식 뒤에는 간간이 들려오던 소식마저 뚝 끊겨버렸다. 이제는 고향에 가도 반겨줄 사람 없이 먼발치에서 남의 집이 되어버린 아주머니댁을 안타까이 바라볼 뿐이다. 


끼니때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가마솥에 밥 짓던 옛날을 회상하며 한숨지을 아주머니가 눈에 선하다. 피붙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하루하루 눈물짓는 신세가 된 아주머니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마을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행주치마 두른 아주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토방을 내려오면서 나를 부를 것만 같아서. 


부디 부처님 앞에서 공덕을 잘 닦아 조상의 죄가 조금이라도 씻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잃었던 집과 텃밭을 되찾아 텅 빈 아궁이에도 다시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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