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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Nov 03. 2023

요술쟁이가 만든 빵

오로지 밀가루와 막걸리

      

  빵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멈추게 된다. 구수한 빵 냄새가 문밖까지 새어 나와 내 발길을 슬그머니 붙들어서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본체만 체할 수 없듯, 나도 빵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가슴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헤어진 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좀체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리움이 아니고 무엇일까.


아침을 먹고 나면 동네 아이들은 우리 집 너른 뒷마당으로 달려왔다. 하나둘 모여든 친구들과 사방치기나 술래잡기를 하다 보면 잔등 흥건할 정도로 땀이 배었다. 장독대에 숨어 숨바꼭질할 때도 그칠 줄 모르는 까르륵 웃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뒷산까지 울려 퍼졌다. 그래서인지 점심때도 안 되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맘 때즈음이면 어디선가 시장기를 돋워주는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를 좇아 떼를 지어 성급히 안마당으로 뛰어가 보면 역시 꼬리는 부엌으로 이어졌다.


나무 문틈으로 솔솔 새어 나온 빵 찌는 냄새가 우리에게 어서 들어오라 손짓했다. 할머니는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훔치면서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생솔가지가 타면서 내는 지독히 매운 연기에 콜록거리면서도 우리를 보는 눈길은 얼마나 따뜻. 우리는 커다란 가마솥을 마주한 채 동그마니 앉아 턱을 괴고 빵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점점 세어질 얼굴은 점점 발갛게 익어갔고, 입에서는 군침이 질질 흘다.


이윽고 가마솥뚜껑이 열리, 부엌은 별안간 개 같은 으로 가득 덮면서 희뿌연 해졌다. 자욱하게 깔렸던 김을 양팔로 휙 걷어낸 할머니는 어느새 커다란 쟁반 가득 넓적한 빵을 내놓았다. 밑바닥에는 커다란 초록 호박잎이 붙었고, 가운데에는 듬성듬성 붉은 강낭콩이 박힌 빵의 탄생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배가 고팠던 이유도 있었지만 리를 위해 술을 부려준 할머니를 위한 감탄이었다. 한 입 베어 물을 때마다 입안으로 구수한 맛과 더해진 시큼한 맛이 연하게 퍼졌다. 버터는커녕 우유 한 방울 들어가지 않고, 밀가루에 오로지 막걸리만 넣어 만든 빵, 그래서  ‘술빵’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나 보다.


얼마나 급했던지 설겅설겅 씹어 삼키는 모습을 본 할머니는 마당 가에 있는 샘에서 물을 퍼왔다.

“얘들아. 체할라, 물도 마시면서 천천히 먹으렴.”

펌프질로 갓 올린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 마주씨익 웃었다.


할머니는 가끔 술빵을 쪄서 이웃에 돌리기도 했다.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논두렁을 지나는 길이 왜 그렇게 신바람이 났을까. 쟁반을 감싼 보자기 틈으로 올라오는 열기가  내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누런 벼 이삭들 사이를 뛰놀던 메뚜기들처럼 나도 함께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오늘도 나는 고향 내음 풍기는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다. 구색 맞춘 여러 가지 종류의 빵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화려한 치장으로 멋스럽게 꾸민 것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인지상정이다. 대부분 화려한 색감을 지녔거나 과일이나 생크림으로 단장한 것들이다. 첫눈에 딱 봐도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눈 녹듯 녹아버릴 듯 하다. 눈요기하기에는 제격이지만 정작 내 눈길은  밀가루 본연의 거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에 꽂혔다. 대부분 겉치장에 무신경한 듯, 별다른 꾸밈이 없어 밋밋하게 보이는 것들이다.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나한테 처음 보는 빵 하나를 든 주인이 살짝 귀띔해 준다.

“요즘 복고풍이 유행이라, 우리 것을 선보이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유심히 살펴보니 모양이나 색깔이 꼭 어릴 적 먹던 그 술빵처럼 보였다. 향수에 젖은 사람들을 유혹하려고 붙인  ‘보리떡’이라는 이름이 아주 그럴듯했다. 어릴 적 먹던 술빵의 이미지 떠오르는 듯해서 바구니에 몇 개를 담았다.


마침 식구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TV를 시청 중이었다. 이참에 추억이 서린 술빵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줄 요량으로 봉지를 펼쳐 보였다.

“엄마가 좋아했던 건데 맛 좀 볼래?”

‘보리떡’이라는 이름표를 보며 냉큼 손을 뻗치지 않는 식구들한테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어주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못 본 체하고 나도 한쪽 떼어먹어봤다. 기대했던 맛과는 사뭇 달라 나도 실망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


외면당한 보리빵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다. 모양이나 색깔로 봐서는 영락없이 옛날에 먹던 그 술빵이건만 입안으로 퍼지는 맛과 향은 그게 아니라 한다. 너무 큰 기대를 했었나 보다. 현대인의 향수를 달래려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 제품과 집에서 손으로 정성껏 만든 것을 비교한 자체가 무리다. 물론 먹는 것이 너무 흔해진 이유도 있을 테다. 우리 입맛이 서양 쪽으로 기울어져 자극성 있는 음식을 선호하게 된 것도 한몫을 차지하리라.


손녀를 위해 아궁이 앞에서 불씨를 다독이던 할머니. 가마솥뚜껑을 열어젖히고, 사랑의 입김을 훅 불어넣으며 ‘짠’하고 빵을 나타나게 했던 할머니는 요술쟁이였다. 가끔 그 요술 솜씨가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따스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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